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서 새로운 항로를 결정하는 선장은 없다. 몰아치는 파도와 울부짖는 바람 속에서는 눈앞의 등대마저 보이지 않는 법. 노련한 항해사는 폭풍이 멎고 바다가 잠잠해질 때까지 닻을 내리고 기다리는 지혜를 안다. 우리의 마음도 이와 같다. 분노, 슬픔, 불안, 심지어 주체할 수 없는 기쁨과 같은 격한 감정이 휘몰아칠 때, 우리의 내면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폭풍의 바다가 된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내리는 결정은, 난파선으로 향하는 성급한 키 돌리기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감정이 격해질 때 우리의 이성은 속수무책으로 마비된다. 뇌과학은 이를 ‘편도체 납치(amygdala hijack)’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위협이나 강한 자극을 감지한 뇌의 편도체(amygdala, 감정 중추)가 활성화되면, 이성적 판단과 장기적 계획을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정지된다는 것이다. 생존을 위해 즉각적인 ‘투쟁-도피(fight-or-flight)’ 반응을 해야 했던 원시시대의 유산이다.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대부분의 위협은 생존이 아닌 관계와 자존감의 문제다. 모욕적인 한마디, 예기치 못한 실패, 부당한 대우 앞에서 우리의 뇌는 여전히 맹수를 만난 것처럼 비상경보를 울린다. 그리고 이 ‘납치된’ 상태에서 우리는 평생을 후회할지도 모를 말과 행동을 쏟아낸다. 격분하여 보낸 문자 메시지 한 통이 수십 년의 우정을 무너뜨리고, 불안감에 쫓겨 체결한 계약이 평생의 족쇄가 되며, 일시적인 연민으로 한 약속이 감당 못 할 책임으로 돌아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감정이라는 거친 파도 앞에서 영원히 표류해야만 하는 존재인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니코마코스 윤리학(Nicomachean Ethics)』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화를 낼 수 있다. 그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올바른 대상에게, 올바른 정도로, 올바른 시간에,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화를 내는 것. 그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의 통찰은 감정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스리는 것, 즉 감정과 행동 사이에 의식적인 ‘공간’을 만드는 것이 지혜의 핵심임을 보여준다.
감정의 폭풍이 몰려올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결정’이 아니라 ‘멈춤’이다. 어떤 행동도 하지 않는 것, 그것이 가장 적극적인 행동이다. 불같이 화가 치밀어 오를 때 그 자리를 잠시 피하는 것,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하룻밤을 자고 다시 생각하는 것, 이 물리적이고 시간적인 유예는 감정의 격류에 휩쓸려 떠내려가지 않도록 우리를 붙잡아주는 든든한 밧줄이 된다. 이 멈춤의 공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폭풍의 눈 안으로 들어가 고요히 상황을 직시할 수 있다. ‘나를 화나게 한 저 말의 진짜 의도는 무엇일까?’, ‘이 불안함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 이 결정이 1년 후의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 차분한 질문들은 우리를 감정의 포로에서 구출하여 상황을 분석하는 현명한 전략가로 변화시킨다.
가장 중요한 결정은 가장 뜨거운 감정이 아니라 가장 차분한 이성에서 나와야 한다. 당신의 삶을 뒤흔들 만큼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섰는가? 그렇다면 먼저 당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라. 그곳이 지금 폭풍우 치는 바다인가, 아니면 고요한 호수인가. 만약 바다가 성나 있다면, 성급히 돛을 올리지 마라.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파도가 지나가고, 수면 위로 모든 것이 명료하게 비치는 순간은 반드시 온다. 그때가 바로 당신이 나아갈 길을 선택할 때다.
폭풍 속에서는 닻을 내리는 것이 유일한 항해술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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