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사랑을 가득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사랑을 조금씩 꺼내 쓰는 일이다.
다시말해 일반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혼을 통해 점차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진되는 과정이다.
처음엔 그것만 있으면 충분할 줄 알았다.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던 감정,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벅참,
헤어짐이 두려워 붙잡던 마음.
사랑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충만했고,
우리의 결합은 그 감정을 근거로 삼았다.
그러나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그 감정을 천천히 꺼내 써가는 일이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의 무게 속에서,
서로의 다름을 마주하는 수많은 순간들 속에서,
사랑은 조용히 소진된다.
소란스럽지도, 극적으로 타오르지도 않은 채
조금씩 줄어든다.
사소한 갈등, 반복되는 일상,
말의 오해, 기대의 어긋남 속에서
서로를 향해 불태우던 감정은
서서히 익숙함과 생존의 감각으로 바뀐다.
이렇게 결혼 생활에서 사랑은 소진된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실패나 불행을 뜻하진 않는다.
사랑이 소진되면서 드러나는 건
사랑보다 더 깊은 것들이다.
존중, 책임, 유머, 인내,
그리고 서로를 향한 오래된 연민.
감정이 희미해진 자리를
그런 것들이 메운다.
때로는 거리두기,
때로는 침묵,
때로는 ‘내가 옳지만 져주는’ 선택이
부부라는 배를 띄운다.
이 사실이 슬픈 건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럽고, 건강한 일이다.
감정은 언제나 사라지기 마련이고,
사라진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그 관계의 깊이를 만든다.
그래서 결국 필요한 건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태도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살아가는 방식에서 묻어나는 사랑은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깊어진다.
감정은 사라져도, 선택은 남는다.
감정은 소진돼도, 태도는 자란다.
사랑은 시작의 조건이지만
지속의 조건은 아니다.
같은 사람과 계속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그 마음이야말로 사랑보다 더 단단하다.
사랑은 줄어들지만,
사랑하려는 태도는 자란다.
오히려 줄어든 감정이후부터 진정한 사랑은 시작된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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