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이라는 이름의 전시회우리는 왜 행복을 ‘인증’해야만 하는가

경험이라는 이름의 전시회<span style='font-size:18px; display: block; margin-top:0px; margin-bottom:4px;'>우리는 왜 행복을 ‘인증’해야만 하는가</span>

음식이 나오자마자 숟가락을 드는 사람은 없다. 먼저 스마트폰을 들어 가장 먹음직스러운 각도를 잡고, 필터를 입히고, 정성껏 보정한 사진을 찍는다. 여행지의 절경 앞에서도 감탄보다 ‘인생샷’을 건지기 위한 분투가 앞선다. 그렇게 수십 장의 사진을 찍고 가장 완벽한 한 컷을 골라 SNS에 올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경험은 ‘완성’된다. ‘좋아요’ 숫자가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것을 확인하며 우리는 안도한다. ‘소유’의 시대를 지나 ‘경험’의 시대가 왔다고들 말하지만, 과연 우리는 진정으로 경험하고 있는가, 아니면 경험을 재료 삼아 타인에게 전시할 또 다른 상품을 만들고 있는가?

이 현상의 중심에는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라는 시대적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타인의 완벽하게 편집된 일상이 24시간 스트리밍되는 SNS 피드 속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감각에 시달린다. 친구의 해외여행 사진, 동료의 주말 맛집 탐방, 심지어 인플루언서의 ‘소소한’ 일상마저도 나의 삶이 어딘가 결핍되어 있다는 증거처럼 다가온다. 이 불안은 우리를 소비로 내몬다. 다만 과거처럼 명품 가방이나 고급 시계를 사는 대신, 이제 우리는 ‘경험’을 산다. 인스타그램에 올릴 만한 근사한 경험, 나의 존재를 증명해 줄 특별한 경험을 구매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경험의 본질이 심각하게 왜곡된다는 점이다. 본래 경험이란 행위 그 자체에 목적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인증’과 ‘전시’가 목적이 되는 순간, 경험은 고된 노동으로 전락한다. 최고의 사진을 찍기 위해 장소를 물색하고, 수십 번 포즈를 바꾸고, 가장 그럴싸한 문구를 고심하는 과정은 즐거움이라기보다 프로젝트 수행에 가깝다. 경험의 주체는 ‘나’ 자신에서, 나를 바라보는 불특정 다수의 ‘타인’으로 옮겨간다. 독일의 사회철학자 한병철이 『피로사회』에서 지적했듯, 우리는 이제 타인의 강요가 아닌 스스로를 착취하는 ‘성과주체’가 되었다. 행복마저도 성과가 된 시대, 우리는 ‘얼마나 행복해 보이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한다.

이는 행복의 역설이다. 우리는 더 행복해지기 위해 특별한 경험을 찾아 나서지만, 그 경험을 전시하는 데 몰두하는 동안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눈앞의 노을을 감상하는 대신 스마트폰 액정 속 노을의 색감을 보정하고, 친구와의 대화에 집중하는 대신 스토리 영상의 각도를 재고 있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몰입(flow)’의 즐거움은 사라지고, 타인의 인정을 갈구하는 조바심만이 남는다. 결국 우리가 얻는 것은 경험의 충만함이 아니라, ‘좋아요’가 찍힌 뒤 찾아오는 짧은 안도감과 이내 또 다른 경험을 찾아 헤매야 하는 공허함이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전시장에서 우리는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까? 모든 SNS를 끊고 속세와 단절하는 것은 현실적인 해법이 아닐 것이다. 시작은 ‘기록’과 ‘전시’를 분리하는 작은 시도에서부터 가능하다. 어떤 멋진 순간을 마주했을 때, 그것을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을 위해 기록해 보는 것이다. 혹은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고, 오롯이 그 순간의 감각과 감정에만 집중해 보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중력에서 벗어난 경험은 의외로 더 가볍고 자유로울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행복마저도 ‘인증’받아야만 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하지만 진짜 행복은 타인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고 내밀한 충만함의 순간에 존재한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온전히 당신 자신만을 위해 무언가를 경험한 것은 언제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야말로, 경험이 상품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잃어버린 행복의 본질을 되찾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현대 사회는 소유보다 경험을 중시하지만, 그 경험은 SNS에 ‘전시’될 때 완성되는 상품으로 전락했다. 타인의 편집된 삶을 보며 ‘나만 뒤처지고 있다’는 포모(FOMO) 불안감은 우리를 ‘인증’을 위한 경험 소비로 내몰고, 이 과정에서 경험은 행복을 위한 여정이 아닌 타인의 인정을 얻기 위한 노동이 된다. 행복마저 성과가 된 시대, 타인의 시선에서 벗어나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경험의 순간을 되찾는 것이야말로 공허한 전시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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