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내가 사용하지 않던 단어를 불쑥 내뱉을 때 스스로 놀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것은 얼마 전 자주 만났던 친구 K가 즐겨 쓰던 추임새이거나, P 선배가 습관처럼 사용하던 비유일 때가 많다. 우리는 이토록 쉽게, 공기처럼 스며든다. 소리 없이 서로의 일부가 된다.
경영 사상가 짐 론(Jim Rohn)은 “당신은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다섯 사람의 평균”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사람들은 대개 이 명제를 소득이나 성취, 지위의 관점에서 해석한다. 더 나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유용한 자기계발의 언어다.
하지만 나는 이 명제를 ‘존재의 전염(contagion of being)’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읽는다. 그것은 성공의 공식이기 이전에, 관계가 작동하는 물리법칙에 가깝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곁에 있는 사람의 말투를, 표정을, 걸음걸이를, 심지어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gaze)마저 닮아간다. 이것은 단순한 모방(mimicry)이 아니다. 깊은 차원의 공명(resonance)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끊임없이 조율(tuning)당하는 악기와 같다.
‘평균’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무섭다. 만약 내 주변을 채운 평균값이 냉소와 무기력이라면 어떻게 될까? 타인의 절망이 나의 기본값이 될 수도 있다. 습관적인 불평이 나의 언어가 될 수도 있다. 심리학은 이를 ‘사회적 감염(social contagion)’이나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의 작용으로 설명하려 하지만, 나는 이것이 생존 본능을 넘어선, ‘영혼의 투과성(permeability of the soul)’이라 느낀다. 우리는 타인이라는 거울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고 규정한다. 그 거울이 뿌옇거나 왜곡되어 있다면, 그 거울에 비친 상(image) 또한 온전할 리 없다.
물론 우리는 환경을 전적으로 선택할 수 없다. 가족이나 직장 동료처럼, 때로는 삶이 나에게 특정한 관계를 ‘주어진 값’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속수무책으로 물들어 가야만 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선택지가 남아있다. 바로 ‘거리 조절’과 ‘의식적인 선택’이다. 누구에게 나의 가장 취약한 시간을 내어줄 것인가? 누구의 언어를 나의 내면에 들일 것을 허락할 것인가? 물리적인 시간을 통제할 수 없다면, 적어도 감정의 주파수를 맞추는 일에는 신중해야 한다.
더 나아가, 우리는 질문을 뒤집어 보아야 한다. 나는 지금, 누군가에게 어떤 ‘평균’을 제공하고 있는가? 나는 타인에게 더해져 그의 세계를 확장하는 사람인가, 아니면 그의 가능성을 갉아먹고 축소하는 사람인가?
‘당신의 미래’라는 말은 결국 ‘당신의 현존’이라는 말과 같다. 당신이 머무는 시선, 당신이 나누는 대화, 당신이 감염되는 감정의 총합이 곧 당신이다. 곁을 내어준다는 것은 나의 세계 일부를 기꺼이 타인에게 내어주고, 동시에 타인의 세계 일부를 나의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엄중한 약속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풍경이 되고, 이내 그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당신은 주변 5명 사람의 평균’이라는 명제는 소득이나 성공을 넘어, ‘존재의 전염’을 의미한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곁에 있는 사람의 말투, 시선, 감정을 닮아가며, 이는 관계의 물리법칙과 같다. 타인의 냉소가 나의 기본값이 될 수도 있기에, 우리는 누구에게 시간을 내어줄지 의식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나아가 나 자신이 타인에게 어떤 ‘평균’을 제공하는지 성찰해야 한다. 우리는 서로에게 풍경이 되며 그 속으로 스며든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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