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이름의 정원나쁜 관계의 잡초를 뽑아내고 비로소 나를 만나는 시간

우리의 영혼은 하나의 정원과 같다. 어떤 관계는 그 정원에 햇살과 단비를 내려 꽃을 피우게 하지만, 어떤 관계는 독이 든 잡초처럼 뿌리내려 좋은 기운을 모두 빨아들인다. 우리는 종종 그 잡초를 뽑아낼 용기가 없어 정원 전체가 황폐해지는 것을 방치한다. 외로움이라는 허기에 못 이겨, 유독한 관계라도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하지만 잡초가 무성한 땅에서는 그 어떤 아름다운 꽃도 숨 쉴 수 없다. 진정한 풍요는 때로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데서 시작된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무리를 지어 안정을 찾으려는 사회적 동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혼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의미 없는 단체 채팅방에 소속되어 있고, 마음이 가지 않는 모임에 억지로 얼굴을 비추는 것은 어쩌면 그 원초적 공포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David Riesman)이 그의 저서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에서 지적했듯, 현대인은 타인의 시선과 인정에 목마른 ‘타인 지향형 인간’이 되어 군중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고립감을 느낀다. 나를 깎아내리는 농담, 은근한 무시,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나를 대하는 태도. 이런 관계 속에 머무는 것은 나의 존엄성을 갉아먹는 일에 스스로 동의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것은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착취당하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외로움(Loneliness)’과 ‘고독(Solitude)’을 구분해야 한다. 외로움이 타인의 부재로 인한 결핍과 고통이라면, 고독은 스스로 선택한 충만과 성찰의 시간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월든 호숫가에서 홀로 2년을 보내며 “나는 고독만큼 친밀한 동반자를 만난 적이 없다”고 고백했다. 그는 고독 속에서 자연과 교감하고, 자신의 내면과 깊은 대화를 나누며 삶의 본질에 다가갔다. 나쁜 사람들과의 공허한 시간은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키지만, 기꺼이 선택한 고독은 우리를 더 단단하고 깊이 있는 존재로 만든다. 그 고요 속에서 비로소 우리는 세상의 소음이 아닌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나쁜 관계를 끊어내는 것은 사회적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나의 정신적 안녕과 성장을 위한 가장 현명한 투자이자, 나 자신에게 베풀 수 있는 최고의 예의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는 욕심을 버리자. 모두와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물이 맞지 않는 땅에서는 어떤 씨앗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법이다. 당신의 에너지를 고갈시키는 관계에서 한 걸음 물러설 때, 우리는 비로소 나를 위한 건강한 공간을 확보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우리는 자신을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며, 나아가 타인과 진실하게 연결되는 새로운 길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의 정원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아름다운 꽃들이 햇살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가, 아니면 잡초에 뒤덮여 시들어 가고 있는가?

나쁜 관계 속에 머무는 것은 천천히 독을 마시는 것과 같다. 때로 가장 위대한 치유는 홀로 서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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