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 말할 수 없는 것들
교회는 신앙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와 위로를 약속한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는 예수의 가르침처럼, 교회는 상처 입은 영혼들을 돌보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현실 속 교회는 때로 보호 대신 침묵을 선택한다. 그 침묵 속에서 피해자의 목소리는 잦아들고, 문제의 본질은 흐려지며, 교회의 명예만 남는다.
기독교 공동체 안에는 이야기할 수 없는 주제들이 있다. 교회 지도자의 성폭력, 가정 내 폭력, 은밀한 불륜, 우울증과 같은 정신 건강 문제들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문제들은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지만, 특히 교회 안에서는 더 쉽게 감춰지고, 더 강력하게 억압된다. 교회는 침묵을 통해 공동체의 결속을 유지하고자 하지만, 그 대가는 피해자의 고통과 진실의 외면이라는 큰 희생을 수반한다.
교회가 왜 이토록 침묵을 강요하는지 이해하려면, 그 이면에 숨어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살펴봐야 한다. 교회는 이상적인 도덕성을 제시하고 성도들에게 거룩함과 순결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교회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은 단순히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교회 전체의 명예와 직결된 문제로 여겨진다. 문제가 외부로 알려지는 순간, 교회의 도덕적 권위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특히 교회 지도자들이 성폭력이나 불륜과 같은 도덕적 문제에 연루될 경우, 공동체는 피해자의 목소리를 먼저 들으려 하지 않는다. 피해자가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면 교회는 “성도 간의 사랑과 용서”를 강조하며 문제를 덮는다. 피해자가 문제를 공식화하면 오히려 “교회의 명예를 실추시킨다”는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신앙적 압박 속에서 침묵을 강요받으며, 죄책감과 외로움 속에 방치된다.
가정폭력 문제 역시 교회 안에서 심각하게 은폐되는 영역이다. 기독교는 결혼을 신성시하며, 가정의 해체를 죄악으로 규정한다. 그렇기에 교회는 폭력의 피해자에게도 “참고 기도하라”,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실 것”이라는 말로 버티게 한다. 피해자가 끝내 이혼을 결심하면, 교회는 오히려 피해자를 신앙이 약한 사람으로 평가하고 비판한다. 피해자는 교회의 시선 속에서 상처를 드러내지 못한 채, 보이지 않는 감옥 속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정신 건강 문제 또한 교회에서 터부시되는 영역이다. 많은 교회는 우울증이나 불안 장애와 같은 정신적 고통을 신앙의 부족이나 영적 문제로 치부한다. 우울증을 고백한 성도에게는 “더 기도하라”, “말씀을 더 묵상하라”는 조언만 반복될 뿐이다. 이는 실질적인 치료를 지연시키고, 오히려 환자의 상태를 악화시킨다. 결국 성도들은 자신의 아픔을 교회 내에서 숨기고, 혼자서 고통을 견디거나 교회를 떠나게 된다.
이러한 교회의 침묵 문화는 피해자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교회가 보호하려 했던 도덕적 권위는, 오히려 위선과 이중성으로 얼룩진다. 교회가 거룩함을 외치면서도 내부의 문제에 침묵하는 순간, 그 거룩함은 허상으로 전락한다.
더 큰 문제는 침묵의 문화를 깨뜨리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데 있다. 교회는 공동체의 결속력을 유지하기 위해 진실을 숨기고, 진실을 요구하는 이들에게는 배신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성경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용서와 화해”를 명목으로 피해자에게 침묵을 강요하고, 가해자는 교회의 보호 아래 숨어 있다. 그러나 침묵 속에서 이루어진 화해는 결코 진정한 용서가 될 수 없다. 그것은 피해자를 다시 한번 상처 입히는 일이며, 가해자에게는 또 다른 기회를 주는 것일 뿐이다.
교회가 진정으로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려면 침묵의 문화를 버리고, 고통받는 이들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어야 한다. 예수가 행했던 일은 종교적 권위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억압당하고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그는 상처 입은 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고, 그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다. 교회가 진정한 신앙 공동체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이 예수의 모습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교회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할 수 있는 공간으로 변화되려면, 성도들이 두려움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피해자들이 교회 안에서 안전하게 보호받고, 가해자들이 적절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진정한 회개와 용서의 출발점이다. 정신 건강 문제 역시 신앙적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자연스러운 아픔으로 받아들이고 전문적인 도움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신앙 공동체의 진정한 힘은, 교회가 가진 권위와 명성이 아니라, 상처 입은 자들에게 진실하게 귀 기울이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데 있다. 더 이상 교회가 침묵을 강요하지 않고, 침묵의 무게에 눌린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줄 수 있을 때, 비로소 교회는 진정한 신앙의 공동체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mail: brian@hyuncheong.kim
www.hyuncheong.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