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욕망의 은밀한 평행선왜 정치인의 성범죄는 반복되는가

정치인의 성범죄는 단순한 일탈일까?
개인의 도덕적 결함이나 충동 조절 실패로 치부하기엔, 그 빈도와 패턴이 너무 뚜렷하다.
이쯤 되면 질문은 바뀌어야 한다.
왜 권력을 가진 이들이 성적 범죄를 저지르는가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자의 구조 안에서 성적 욕망은 어떤 방식으로 발현되는가로.

이 글은 성범죄를 변호하지 않는다. 오히려 반대로 묻는다.
성적 폭력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권력의 토양’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가.

권력과 성욕은 같은 도파민 회로에서 작동한다

인간의 뇌는 권력을 잡을 때와 성적 쾌락을 경험할 때, 동일한 도파민 보상 회로를 활성화한다.
즉, 지배욕과 성욕은 심리적 거리보다 훨씬 신경생물학적으로 가까운 충동이다.

동물행동학에서도 유사한 패턴이 반복된다.
지배적 수컷은 경쟁에서 이긴 직후 교미를 시도한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목표 이전에, 지배 행위 자체가 강한 성적 자극이 되는 것이다.

정치 권력을 획득한다는 것은 단순한 행정적 권한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타인의 결정권, 시간, 표현, 심지어 감정 반응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을 동반한 자기 강화다.
그리고 그 통제는 종종 ‘타인의 몸’으로까지 확장된다.

성범죄는 지배 구조의 은밀한 확장이다

성폭력은 욕망의 과잉이 아니다.
그것은 지배 구조를 내면화한 자가 자기 의지를 타인의 경계 안으로 침투시키는 폭력이다.
정치적 권력은 시스템과 제도의 테두리 안에 있는 듯 보이지만,
그 밑에는 “나는 예외다”, “이 정도는 허용된다”는 심리적 무소불위의 감각이 깔려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성은 권력의 미시 구조”라고 말한 바 있다.
성적 권력은 은밀하고 일상적이며, 때론 체제보다 더 체계적으로 타인을 침식한다.
정치인의 성범죄는 바로 이 권력의 비대칭이, 성적 충동과 만날 때 어떤 결과를 낳는지 가장 날것으로 드러내는 사례다.

권력은 통제를 마비시키는 힘이다

심리학은 말한다. 권력을 오래 가진 사람일수록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프린스턴대학교의 연구는 공감 능력이 권력 유지 기간에 따라 감소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정치인들이 자신의 행동을 ‘별 것 아닌 실수’로 축소하는 이유는 단지 뻔뻔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공감의 구조 자체가 마모된 사람들일 수 있다.
이것이 단순한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구조가 만들어내는 인지적 왜곡이라면, 문제는 훨씬 심각하다.

그 왜곡을 더욱 강화시키는 것이 한국의 정치 구조다.
계파, 충성, 이미지로 정당성이 만들어지고,
수많은 보좌진과 관계자들이 “그분의 기분”을 먼저 고려하는 정치 문화 안에서
욕망을 견제할 장치도, 말릴 책임도 사라진다.

성욕보다 위험한 것은, 그것을 제어할 수 없는 구조다

성욕은 생물학적 본능이다.
그러나 성범죄는 철저히 사회적 결과다.
그 둘 사이를 연결하는 고리는 ‘무책임한 권력’이다.
즉, 욕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욕망을 아무도 제어하지 않는 구조가 문제다.

가장 위험한 구조는, 권력자가 자신의 경계를 상실할 때다.
그리고 그 경계는 주변의 예스맨, 언론의 침묵, 지지층의 맹목에 의해 무너진다.
결국 성범죄는 권력에 대한 감시가 멈춘 곳에서 가장 먼저 터지는 경보음이다.

정치란 인간의 욕망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다

정치인은 시스템 속의 행위자이지만, 그 이전에 욕망하는 인간이다.
정치 시스템이 그 욕망을 견제하지 못할 때,
그곳은 조직적 범죄의 온상이 된다.
정치인의 성범죄는 그 인간의 취약성을 드러내는 동시에,
우리 사회가 욕망을 다루는 방식의 부실함을 말해준다.

우리는 지금, 성범죄를 보며 분노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욕망이 왜 멈추지 않았는가, 누가 그것을 말리지 않았는가,
그리고 무엇이 그를 ‘예외적 인간’으로 만들었는가를 물어야 한다.

정치는 욕망이 드러나는 무대다.
그러나 그 무대가 욕망의 충돌이 아니라,
절제와 균형의 실험장이 되어야 민주주의는 지속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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