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차이와 구조의 깊이권리·권한·권력

권리와 권한과 권력.
비슷하게 들리지만, 다른 문을 연다.
어떤 문은 ‘내 몫’을 향해 열리고, 어떤 문은 ‘내 역할’을, 또 어떤 문은 ‘타인 위에 서는 힘’을 연다.
그 미묘한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면, 우리는 말의 그림자 속에서 길을 잃는다.

 

1. 권리: 타고난 몫, 빼앗길 수 없는 선(線)

권리(權利)는 개인이 인간으로서 갖는 정당한 몫이다.
태어난 순간부터 주어진 것. 혹은 사회 계약 속에서 보장받아야 할 것.
생명권, 표현의 자유, 노동의 대가처럼 존재만으로 발생하는 청구권이다.

권리는 타인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 속에 있다.
누군가 당신의 권리를 ‘주었다’고 말하면,
그건 빌려준 것이 아니라, 본래 당신 것이 잠시 반환된 것뿐이다.

‘내 몫’을 ‘무기’로

권리는 본래 자기 보호의 울타리다.
그러나 울타리가 성벽이 되는 순간, 권리는 방패를 넘어 창이 된다.

  • 피해자 지위의 독점: 정당한 권리 주장을 넘어, 권리로 타인의 행동을 통제하려는 경우.
  • 권리의 절대화: ‘내 권리’만을 주장하며, 공동체의 의무와 균형을 거부하는 태도.

결국 권리를 ‘이길 수 있는 카드’로 쓰면, 권리의 본질은 변질된다.
권리는 관계를 보호하는 기초이지만, 남용하면 관계를 파괴하는 칼날이 된다.

 

2. 권한: 역할로부터 부여받은 허용치

권한(權限)은 역할이 만드는 허용 범위다.
회사의 팀장이 결재할 수 있는 금액, 법관이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자격처럼
지위·직무·계약이 허락한 행위의 한계다.

권한은 고정된 것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 계약에 따라, 신뢰의 정도에 따라 변한다.
권리를 넘어 권한을 행사하려는 순간, 그 행위는 월권(越權)이 된다.
그래서 권한은 언제나 ‘범위’라는 울타리를 가진다.

울타리를 넘어서는 순간

권한은 역할과 범위 속에서 부여된 허용치다.
문제는, 그 범위를 넘어설 때 생긴다.

  • 월권(越權): 자신의 직무 범위를 넘어 결정·지시하는 행위.
  • 권한의 사유화: 직무상의 권한을 개인적 이익이나 사적 영향력 확장에 활용.

이 경우, 권한은 제도적 신뢰를 잠식한다.
권한의 월경은 작은 이익을 얻는 대신, 제도의 장기적 기반을 무너뜨린다.

 

3. 권력: 지배와 영향의 구조

권력(權力)은 사람과 사람 사이, 집단과 집단 사이에서 발생하는 지배와 영향의 구조다.
정치 권력처럼 제도화된 경우도 있지만,
대화의 주도권, 자원의 배분권, 여론을 움직이는 능력처럼
비형식적이고 비가시적인 형태로도 작동한다.

권력은 권리와 권한이 뒤섞여 탄생하지만,
본질은 ‘나의 의지가 타인의 선택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힘’이다.
이 힘이 공공선을 향할 수도 있지만, 사익의 도구가 되면 권력은 폭력이 된다.

힘이 폭력으로 변하는 순간

권력은 본래 영향력이다. 그러나 권력의 구조가 사익과 결합하면,
그 영향력은 통제와 강압으로 변한다.

  • 정보 독점: 필요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제공하거나 은폐해 여론과 판단을 통제.
  • 보복과 배제: 반대자에 대한 보복, 비협조자에 대한 배제.
  • 의존성 강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을 의존 상태로 만드는 전략.

권력은 스스로 한계를 설정하지 않는다.
그래서 권력의 오남용은 항상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언어를 발명한다.
“안정을 위해”, “질서를 위해”, “더 큰 선을 위해” 같은 말들이다.

 

4. 또 다른 결: 권익·권세·기득권

  • 권익(權益): 권리와 이익이 결합된 개념. 사회·경제적 혜택을 포함한 몫.
  • 권세(權勢): 권력과 세력의 결합. 영향력에 ‘과시’가 더해진 형태.
  • 기득권(旣得權): 이미 확보하여 지키려는 권리·권력. 종종 변화의 저항선이 된다.

이들은 모두 ‘권’(權)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뻗어 나온 가지들이다.
권(權)은 저울추를 뜻하는데, 원래는 ‘무게를 재다’라는 의미에서 출발한다.
즉, 모든 권은 결국 “누구에게 더 무게를 실어줄 것인가”라는 사회적 선택의 결과다.

 

5. 왜 이 구분이 중요한가

우리는 일상에서 이 말을 뒤섞어 쓴다.
그런데 권리와 권한을 혼동하면, 시민은 스스로 가진 몫을 ‘허락받아야 하는 것’으로 착각한다.
권한과 권력을 혼동하면, 관리자나 지도자는 자신의 역할 범위를 넘어 지배하려 한다.
결국 말의 혼란은 권의 구조를 흐리게 하고, 그 틈에서 부당한 힘이 자란다.

권리·권한·권력은 본래 다른 기원과 기능을 갖지만,
하나의 손 안에서 결합되면 위험은 배가된다.

예를 들어, 지도자가 ‘국민의 권리 보호’를 명분으로 삼아,
자신의 권한을 확대하고, 권력을 집중시키는 경우다.
결과적으로 권리는 보호되지 않고, 권력만 강화된다.

이것이 바로 권의 삼중 결합이다.
이 구조 속에서는 언어와 제도가 모두 힘의 도구가 된다.

 

6. 실존적 질문

당신이 가진 것은 권리인가, 권한인가, 권력인가?
그 힘은 누가 주었고, 어떻게 유지되는가?
그리고 그것은 누구를 위해 쓰이고 있는가?

권력은 무게추다.
어느 쪽에 기울어질지는, 그 무게를 쥔 손이 무엇을 위해 움직이는가에 달려 있다.

권의 오남용은 조용히 시작되고,
멈추기 전까지는 더 큰 힘을 요구한다.
멈추는 법을 모르는 손에 쥐어진 권은,
언제나 타인을 짓누르는 추(錘)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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