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말투를 흉내 내는 로봇 장난감이 있다.
아이가 “안녕!” 하면, 로봇도 “안녕!” 한다.
하지만 아이는 곧 그 장난감에게 흥미를 잃는다.
왜일까?
그 로봇은 단 한 발자국도 낯선 세계로 데려가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단지 자기 말만 되풀이하는 글은 독자에게 아무런 새로움을 주지 못한다.
반대로, 너무 낯선 글은 독자를 설득하거나 사유의 여지를 주지 못한다.
좋은 글쓰기는 나와 타자 사이를 연결하는 ‘거리 조절’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누구나 말한다. 그러나 말한다고 곧 ‘쓴다’고는 할 수 없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저 생각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을 낯설게 보고, 그것을 언어라는 타인의 질서로 조직하는 일이다.
생각에는 모서리가 없다.
하지만 글에는 구조가 있다.
생각은 흐르지만, 글은 멈추고 구획을 짓는다.
그래서 글을 쓰는 순간, 우리는 처음으로 자기 생각을 ‘의심’하게 된다.
글을 쓴다는 건,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을 정말 알고 있는지, 내가 느낀 것을 정확히 느낀 건지, 내가 믿는 것을 스스로 믿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
글은 자서전이 아니라 실험실이다.
감정은 연료이되, 진리는 목적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글을 통해 감정을 정제하고, 생각을 길들이며,
때로는 그것을 완전히 해체함으로써 새로운 나를 만들어간다.
니체는 말했다.
“당신의 말이 당신을 배신하지 않도록 하라.”
글은 말보다 느리지만 더 정직하다.
그 느림 속에서 우리는
자기모순, 미숙함, 허세, 망설임, 공허함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자아의 편집이 아니라 해체이자 재조립이다.
글쓰기는 ‘결론’이 아니라 ‘관점’이고,
‘정답’이 아니라 ‘사유의 시작’이다.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다.
묻고, 다시 묻고, 언어의 밀실 안에서 고요히 고백한다.
“이건 나의 생각이지만, 다시 말해보자면 꼭 그렇지도 않다.”
그때 비로소, 우리는 어떤 문장을 만난다.
아무도 따라오지 않았지만, 스스로를 이끌어 준 문장.
글쓰기는 나를 나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다시 나에게로 되돌리는 가장 정직한 여행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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