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관계는 종종 보이지 않는 저울 위에서 위태로운 줄타기를 한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니, 너도 그만큼 돌려주어야 한다’는 암묵적인 기대가 저울의 양 끝에 매달려 있다. 생일을 챙겨주었으니 내 생일도 기억해주길 바라고,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었으니 내 어려움도 알아주길 기대한다. 이처럼 대가를 바라는 마음은 순수한 나눔을 교묘한 거래로 변질시킨다. 그 저울이 수평을 이루지 못하는 순간, 관계에는 서운함이라는 균열이 생기고, 우리는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라는 차가운 자본의 논리에 마음을 다치고 만다.
하지만 진정한 나눔은 저울 위가 아닌, 넘쳐흐르는 샘물과 같다. 샘물은 누가 마실지, 얼마나 마실지 계산하지 않는다. 그저 가득 차면 자연스럽게 흘러넘쳐 주변의 마른 땅을 적실 뿐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나눔이란 이처럼 내 마음의 잔이 먼저 충만할 때 가능한 일이다. 스스로가 결핍되어 있으면서 억지로 무언가를 내어주는 것은 나눔이 아니라 희생이며, 그 희생은 언젠가 반드시 보상 심리라는 그림자를 끌고 온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라는 원망 섞인 목소리는 바로 이 결핍의 잔에서 흘러나오는 독백이다. 그러니 우리는 먼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지금 나는 나눌 만큼 충분히 채워져 있는가?’
이러한 나눔의 본질은 칼릴 지브란(Kahlil Gibran)의 시에서도 아름답게 빛난다. 그는 “그대가 가진 것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주는 것이 진정한 나눔”이라고 말하면서도, 그것이 삶에 대한 두려움 없이 기꺼이 내어주는 행위임을 강조했다. 이는 곧 나눔이 소유의 많고 적음이 아닌, 마음의 태도에 달려 있음을 의미한다. 텅 빈 곳간에서도 마지막 빵 한 조각을 나누는 마음은,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돌려받으려는 계산이 아니라 존재 자체로 온전하기에 가능한 순수한 행위다. 반대로 창고가 가득 차 있어도 더 많은 것을 쌓아두려는 욕심에 사로잡힌 이는 결코 진정한 나눔의 기쁨을 알지 못한다.
진정으로 ‘줄 수 있을 때’란 물질적, 시간적 여유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나의 작은 나눔이 상대에게 온전히 가 닿지 않더라도, 혹은 나의 선의가 왜곡되더라도 흔들리지 않을 내면의 단단함이 준비되었을 때를 뜻한다. 상대의 반응이나 감사의 표시에 나의 가치를 의존하지 않는 것, 나눔 그 자체에서 기쁨을 찾는 것. 이것이 바로 관계의 저울에서 자유로워지는 길이다. 기대 없이 건넨 친절, 보답을 바라지 않고 나눈 시간이야말로 계산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깊은 유대를 만든다. 그런 관계 속에서는 서운함이 깃들 자리가 없다.
나의 나눔이 누군가에게 부담이 되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선의가 보이지 않는 기대를 품고 있지는 않은가? 돌아보아야 한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나눔은 이기적인 세상에 던지는 가장 이타적인 질문이자, 계산적인 관계에 지친 영혼을 위한 가장 따뜻한 쉼터다. 줄 수 있을 때, 기꺼이, 그리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그럴 때 우리의 나눔은 비로소 누군가의 메마른 정원에 단비가 될 것이다.
가장 온전한 나눔은 ‘무엇을’ 주느냐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주느냐에 달려있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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