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에서 ‘말’이 갖는 창조적 권능에 대하여"말씀이 육신이 되어"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 요한복음 1장 1절

기독교는 세계의 시작을 ‘소리’가 아닌, ‘말씀(λόγος)’으로 본다.
무(無)에서 유(有)를 낳는 하나님의 첫 행동은 침묵이 아니라 선포였다.

“빛이 있으라.”
그러자 빛이 있었다.

말은, 하나님의 의지가 외부 세계로 드러나는 방식이다.
곧, 말은 신적 창조의 통로다.


‘말씀’의 존재론: 로고스, 육화된 진리

헬라어 ‘로고스(Logos)’는 단순한 ‘단어’가 아니다.
그것은 이성과 질서, 근본 진리, 곧 존재의 근거 자체를 뜻한다.
요한복음은 이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고 선포한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요 1:14)

기독교는 여기서 독특한 우주론을 제시한다.
말은 단지 개념이 아니라, 실체가 될 수 있으며, 그 실체는 우리 안에 거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은 곧, 우리가 내뱉는 말도 육화될 수 있으며, 사람을 세우거나 무너뜨릴 수 있는 권능을 가진다는 뜻이다.


말은 씨앗이다: 기도와 선언, 축복과 저주의 이중성

“사망과 생명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혀를 사랑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
— 잠언 18:21

기독교는 ‘말’을 생명과 죽음을 가르는 능동적 도구로 본다.
말은 씨앗처럼 뿌려진다.
그 씨앗이 기도가 되면, 하나님의 응답이 되고
그 씨앗이 저주가 되면, 관계와 공동체를 황폐하게 만든다.

예수는 말씀하셨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 15:11)

입 밖의 말은 단순한 감정 배설이 아니라,
내면의 정체성과 신앙, 의도를 그대로 드러내는 신학적 행위다.


예언자와 기도자의 공통점: 말하는 자, 행하는 자

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거의 모두 ‘말하는 자’였다.

  • 모세는 바로 앞에서 “이스라엘을 보내라”고 선포했다.

  • 엘리야는 하늘을 향해 불을 부르짖었다.

  • 예레미야는 울면서 민족을 향해 회개를 촉구했다.

  • 예수는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고 외쳤다.

이 말들은 허공에 흩어진 메아리가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입으로 행한 자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을 통과하여 현실을 관통한 순간,
그 말은 곧 사건이 되었다.


말은 존재의 진실을 밝히는 등불

기독교적 관점에서 말은 ‘진실의 거울’이다.
예수는 “네 말은 곧 네 마음의 창”이라고 보셨다.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 마 12:34)

이때 말은 단순한 커뮤니케이션이 아니라, 영적 진단 도구가 된다.

누군가가 사랑을 말하는가?
그 말은 하나님이 그 안에 계신 증거일 수 있다.
누군가가 저주를 쏟아내는가?
그 말은 그 안에 있는 어둠을 외부로 흘러보낸 것이다.

이처럼 말은 우리의 영혼 상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거울이다.


예수의 침묵이 말해주는 것

하지만 역설적으로, 말보다 더 강력한 말은 ‘침묵’이다.
예수는 심문을 받을 때, 십자가를 지기 전, 묵묵히 침묵하셨다.

그 침묵은 비겁함이 아니라, 말의 무게를 아시는 분의 절제였다.
우리는 불필요한 말로 진실을 희석시킨다.
예수는 침묵으로 진실을 응축시키셨다.

그분의 말은 말해야 할 때만 발화된 완전한 진리였기에,
그 말은 병든 자를 고치고, 죄인을 자유케 하고, 죽은 자를 일으켰다.


말씀의 사람으로 산다는 것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말한 대로 살겠다는 결심을 가진 사람이다.
그리고 말한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뢰를 가진 사람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그 기도는 무대 뒤의 대사가 아니라,
세상을 다시 빚어가는 하나님의 작업에 참여하는 명령이자 응답 요청서다.


말의 윤리, 말의 신학, 말의 삶

기독교는 말의 윤리를 강조한다.

  • 거짓을 말하지 말라.

  • 비방을 삼가라.

  • 서로 격려하라.

  • 원수를 축복하라.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나님은 당신의 창조를 말로 이루셨고,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지어진 존재이기에, 우리도 창조적 말을 사용할 책임과 능력을 지닌다.


기독교에서 말은 창조의 도구이자 하나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수단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존재를 만들어내며, 예수는 그 말씀의 육화된 실체이다. 우리의 말 또한 기도와 선언, 축복과 저주로 현실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말의 힘을 두려워하며, 말과 삶의 일치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증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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