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발달에도 속도가 있다.
어떤 아이는 두 돌도 안 되어 문장을 말하지만,
어떤 아이는 세 살이 다 되어 말문이 열린다.
부모는 흔히 조급해진다.
“혹시 말이 늦은 건 아닐까?”
“다른 아이들은 벌써 저렇게 잘하는데…”
그러나 언어 전문가들은 말한다.
조금 늦게 시작해도 괜찮다고.
중요한 건, 다 자랐을 때
얼마나 자기 언어로 유창하게 세상과 소통하느냐라는 것이다.
삶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빨리 달리고,
누군가는 천천히 걷지만,
속도보다 중요한 건 방향이며,
겉보다 중요한 건 그 속에 깃든 깊이다.
누군가는 이십 대에 회사를 차리고,
누군가는 삼십 대에 첫 연애를 시작한다.
누군가는 쉰 살에 그림을 배우고,
누군가는 여든이 넘어서야 글을 쓴다.
누군가는 빠르게 치고 나가고,
누군가는 뒤에서 숨을 고르며 간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정해진 속도란, 과연 존재하는가?”
우리는 살면서 타인의 템포에 자주 휘말린다.
“이 나이엔 이 정도는 해야지.”
“다들 이만큼은 벌던데.”
“나는 너무 늦은 건 아닐까?”
그 불안은
나의 걸음을 타인의 시계에 맞추게 만든다.
그러나
삶은 경주가 아니라 여행이다.
빠르다고 먼저 도착하는 것도 아니고,
느리다고 낙오되는 것도 아니다.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더 많은 풍경을 안겨주고,
머문 시간이 더 깊은 사색을 만들어낸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저 꾸준히, 내가 갈 수 있는 속도로 달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달리기는 결승선을 향한 경쟁이 아니라,
내 속도와 리듬을 스스로 존중하는 일이다.
중국 고사성어에 ‘수적석천(水滴石穿)’이라는 말이 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
물은 부드럽고 바위는 단단하지만,
지속적인 한 방울의 힘이 결국 단단함을 이긴다.
지속의 힘, 느리지만 멈추지 않는 움직임이
결국 세상을 변화시킨다.
토니 모리슨은 말했다.
“경쟁하지 마라. 너는 너다.”
그 말은 우리에게 조용히 속삭인다.
“늦어도 괜찮아. 네 시간표를 살아.”
그렇다.
사람마다 인생의 계절은 다르다.
누군가는 봄처럼 빨리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가을처럼 늦게 무르익는다.
중요한 건 언제 피었느냐가 아니라
어떤 향기를 남겼는가이다.
그러니 오늘, 조급하지 말자.
당신은 늦지 않았다.
당신은 당신의 시간 안에 있다.
비록 천천히 가더라도
그 길 끝엔 당신만의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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