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도 아파트는 한 채 있어야지.”
“차는 그 정도는 타줘야지 사람들이 무시 안 해.”
“애는 최소한 어느 대학은 나와야 해, 그게 기본이야.”
이런 말들, 어디선가 들어본 적 있지 않은가? 어쩌면 당신도 무심코 이런 말을 해왔을지 모른다. 그저 관성처럼 흘러온 말들. 그러나 이 말들 안에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사회적 기준’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그 기준은 내 삶의 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누구의 성공인가? 누구의 행복인가?
사람들은 종종 ‘성공’을 입고 다닌다.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 고급 외제차,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시작하는 사교육. 이 모든 것이, 무언의 신호처럼 말하고 있다.
“나는 이만큼 누리고 있어요. 나는 괜찮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그런 것들이 정말 당신을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가?
진짜 괜찮은 사람은, 남의 시선 없이도 자신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진짜 부자는, 삶의 순간들을 가난하지 않게 살아내는 사람이다.
니체는 말했다.
“너 자신이 되어라. 남이 정해준 삶을 살지 말고, 네 삶의 의미를 스스로 정의하라.”
그러나 우리는 너무 오래, 너무 깊게 ‘남이 정한 기준’ 속에 갇혀 살아왔다. 그 기준은 하나같이 숫자와 등급으로 이뤄져 있다. 몇 평 아파트인지, 몇 년식 자동차인지, 몇 등 안에 드는지. 그러나 인간은 순위를 매기기에 너무 복잡하고 아름다운 존재다. 우리는 예술처럼 살아야 한다. 점수표처럼이 아니라.
왜 그 무리에 끼어야만 했을까?
동네 학부모 모임, 아파트 단지의 커뮤니티, 사내 인트라넷 속의 암묵적 계급표. 거기에 속하지 않으면 마치 실패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구조. 이 구조는 철저하게 비교와 경쟁에 기반해 있다. 그러나 누군가의 행복을 흉내 낸다고 해서, 내 마음이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내가 속한 무리가 아니라, 내가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는 것. 그게 진짜 시작이다. 실제로 ‘나답게 사는 사람’들은 속해 있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들은 정해진 트랙을 달리지 않고, 자기만의 방향으로 걷는다. 느려도, 덜 가져도, 반짝이진 않아도 말이다.
성공은 성과가 아니라, 상태다
성공을 더 이상 “어디에 사느냐”, “무엇을 타느냐”로 정의하지 말자. 성공은 “어떤 상태로 살아가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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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아침 감사의 눈을 뜨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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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에 의미를 느끼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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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밥을 함께 먹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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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타인을 비교하지 않는 사람.
이들이야말로 진짜 성공한 사람들이다.
행복도 마찬가지다. 행복은 어떤 ‘결과’가 아니라 ‘감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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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도와주었을 때의 잔잔한 뿌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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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오후, 햇살 아래 혼자 걷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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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괜찮아”라고 말해줄 수 있는 여유.
그 모든 감각들이 ‘잘 산 삶’을 만든다.
벗어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다
정해진 기준에서 한 발짝 벗어나는 건 쉽지 않다. 그 기준은 너무 오래된 거짓말처럼 우리 안에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알아야 한다. 우리가 진짜 잘살고 있는지는, 남이 아닌 내가 판단할 문제다. 결국, 삶은 ‘순응’이 아니라 ‘선택’이다. 당신의 삶은, 누군가의 평가가 아니라, 당신의 눈빛에서 빛나야 한다.
언제부턴가 삶의 척도는 ‘얼마나 가졌는가’로 환원되어버렸다.
집, 차, 학력, 직장, 자산.
이것들은 삶의 조건일 수는 있어도, 삶의 내용이 될 수는 없다.
정작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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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사랑을 잃고도 다시 사람을 믿어본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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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날에도 아이의 웃음을 보며 하루를 버틴 적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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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이 가진 것을 감사해본 적 있는가?
우리는 “살아냈는가”라는 질문에 당당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것이 진짜 인간다운 삶이고, 거기서 비로소 고요한 행복이 자란다.
기준을 바꾸는 사람은 기준이 된다
우리 모두가 불편해하면서도 따라가는 ‘남이 정한 기준’. 그 기준이 계속 힘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 무의식중에 그것을 유지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사람이 그 틀을 거부하고, 스스로 기준을 세우는 순간, 그 사람은 더 이상 비교의 대상이 아닌, 기준 그 자체가 된다.
기시미 이치로는 『미움받을 용기』에서 말한다.
“인생은 타인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무리에서 빠져나온 사람은 외롭지만 자유롭고, 고독하지만 강하다. 그들은 “소속되지 않음”이 아니라 “구속되지 않음”을 선택한 사람들이다. 그 기준 전환의 중심에는 단 하나,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남이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삶을 정직하게 살아낼 때 만들어진다.
욕망을 타인의 눈으로 보지 말 것
인스타그램 속 반짝이는 일상, 유튜브 영상 속 호화로운 삶, 그것들을 보며 자기도 모르게 생기는 박탈감. 그러나 그건 욕망이 아니다. 타인의 욕망에 동조한 착시일 뿐이다.
진짜 욕망은 조용하다.
책상 위에 꽃을 놓고 싶다는 마음,
모든 것을 끊고 걷고 싶다는 충동,
새벽에 글을 쓰고 싶은 욕구.
이런 것들이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욕망들이다.
우리는 비교의 욕망이 아니라, 존재의 욕망을 회복해야 한다.
“남들처럼 살기”가 아닌 “나답게 살기”를 향해.
이제 당신 차례다 — 당신은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삶은 어쩌면 조금 불편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불편함이 지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삶이 더 가벼워지고, 더 투명해지고, 더 충만해진다.
이제 당신이 스스로에게 물을 차례다.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은 무엇인가?”
“나는 누구의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지금의 나로 충분하다는 걸, 내가 먼저 믿어줄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답하는 것.
그것이 바로, 남들이 말하는 ‘잘사는 삶’이 아니라, 당신만의 삶을 잘 사는 길이다.
남이 정한 성공의 기준—학교, 아파트, 차, 옷, 지역—은 우리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한다. 그러나 진짜 성공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상태에서 출발한다. 타인의 삶을 흉내 내며 사는 대신, 자신의 감각과 철학에 따라 삶을 설계하라. 행복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 속의 감각이다. 아파트 평수보다 마음의 넓이를, 차종보다 삶의 속도를, 사회적 기준보다 개인의 진실을 따르자.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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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brian@hyuncheong.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