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서거 16주기시대를 뚫고 나온 사람

노무현 대통령 서거 16주기<span style='font-size:18px; display: block; margin-top:7px; margin-bottom:20px;'>시대를 뚫고 나온 사람</span>

오늘로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지 16년이 흘렀다. 세월은 흘렀지만, 그가 남긴 말과 표정, 손짓 하나까지 아직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다. 나는 존경하는 대통령으로는 두말 없이 김대중을 꼽는다. 노무현은 거기에다 하나 더해 좋아하는 대통령이다.

김대중은 시대를 만든 사람이고, 노무현은 시대를 뚫고 나온 사람이었다.

김대중은 냉전과 군부독재의 그늘 아래서 ‘민주주의’라는 등불을 들고 나온 사막의 지도자였다. 그는 역사의 한복판에서 탄압과 망명, 투옥을 겪으면서도, 한국을 정보기술 강국으로, 한류의 뿌리를 내린 문화강국으로 이끌었다. ‘햇볕정책’으로 분단의 벽에 균열을 냈고, IMF라는 국가적 위기 속에서도 강단 있게 국제사회를 설득하며 궤도를 복원했다. 그런 의미에서 김대중은 한국 근현대사의 설계자이며,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구체적 청사진을 그려준 사람이었다.

반면, 노무현은 구조 속에서 살았고, 구조를 넘어 서고자 한 사람이었다. 그는 정치가 기득권의 놀이터가 되는 걸 끝까지 거부했다. ‘가진 자들의 고성’이었던 청와대를, ‘깨어 있는 시민’에게 내주고 싶었던 이상주의자. 허름한 양복을 입고도 품격을 잃지 않았고, 논두렁에서도, 강단에서도 똑같은 어조로 진심을 말했다.

그는 현실주의자였으나, 염치와 도리를 아는 이상주의자였다. 정치적 손해가 되는 줄 알면서도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들려 했고,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 자신을 비판하는 시민의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누가 뭐래도 그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인간적인’ 대통령이었다.

김대중은 체제를 바꾸었고, 노무현은 사람을 바꾸려 했다.

나는 김대중에게서 전략과 철학을, 노무현에게서 용기와 진심을 배운다. 김대중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줬고, 노무현은 ‘어떤 사람으로 남을 것인가’를 고민하게 했다.

노무현의 정치는 염치와 도리로 써내려간  서사였다.

최근 정치판에서 염치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대통령부터 장차관, 국회의원까지 염치를 아는 정치인을 몇명이나 꼽을수 있나? 2025년 현재, 이 단어는 거의 고어(古語)가 되었다. 하지만 노무현에게 염치는 단순한 도덕적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그가 정치를 하는 방식 자체였다. “상대를 짓밟는 정치가 아니라 조금 돌아가더라도 절차를 지키고 결과에 승복하는 정치”를 추구했던 그에게 염치는 생존의 무기였다.

다혈질 속에 숨은 원칙주의자: 1989년 전두환 청문회에서 명패를 내던진 그 순간, 많은 이들이 그를 단순한 다혈질로 치부했다. 하지만 그 분노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그의 필적을 분석한 전문가는 “정의나 정직이 되게 중요한 사람”이라고 진단했다. 급한 성격이지만 도전적이고, 자신을 드러내는 욕망보다는 공정성에 대한 갈망이 더 컸던 것이다. 노무현의 분노는 사적인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구조적 불의에 대한 본능적 거부감이었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의 이반 카라마조프가 신을 거부한 이유와 같았다. 무고한 아이가 고통받는 세상을 용납할 수 없다는 그 마음 말이다.

 

현실적 이상주의, 그 절묘한 균형: 그를 가장 잘 설명하는 표현은 “현실적 이상주의자”다. 이는 모순적 표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매우 정교한 정치철학이었다. 노동 전문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면서도 생계를 위해 조세 사건을 수임했다는 일화가 이를 보여준다. 이상을 포기하지 않되, 현실의 조건을 냉정하게 인식하는 능력 말이다. 한미FTA와 이라크 파병 결정은 진보진영에게는 배신으로, 보수진영에게는 반미로 비춰졌다. 하지만 이는 그가 범주적 사고가 아닌 속성적 사고로 의사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즉, 이념에 매몰되지 않고 현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했다는 뜻이다.

 

그 복합적 내면의 지형: 심리학적 분석에 따르면 그는 INFJ 유형으로 추정된다. “독창성과 내적 독립성이 강하고 완고한 신념과 열정으로 자신의 영감을 구현시켜 나가는 정신적 지도자”의 특성을 보였다. 하지만 동시에 “한 곳에 몰두하는 경향으로 목적 달성에 필요한 주변적 조건을 경시하기”도 했다. 이는 그의 정치적 행보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지역주의 극복이라는 목표에 매진하면서도, 때로는 정치적 현실을 간과하는 면이 있었던 것이다. 세종시 이전이 헌법재판소에서 좌절된 것이 그 예다.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농부의 아들: “대통령 못 해먹겠다”, “미국 엉덩이 뒤에 숨어서”와 같은 직설적 어록은 단순한 말실수가 아니었다. 그것은 반권위주의적 정서의 발현이었다.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시를 통해 판사가 되고, 다시 인권변호사를 거쳐 대통령까지 오른 그에게 기득권의 허위의식은 참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가 추진한 권위주의와 정경유착 타파, 재벌 개혁은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있었다. 상속증여세 포괄주의 도입,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시행, 대기업 간 불공정 담합 처벌 강화 등은 모두 구조적 불평등을 해소하려는 시도였다.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 이유: “강물은 바다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강물처럼!” 그가 남긴 이 문장에는 그의 모든 철학이 담겨 있다. 강물은 굽이굽이 돌아가지만 결국 바다에 도달한다. 때로는 막히고, 때로는 돌아가더라도 목표를 포기하지 않는다. 노무현에게 바다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더불어 사는 사람 모두가 먹는 것 입는 것 이런 걱정 좀 안하고 더럽고 아꼬운 꼬라지 좀 안 보고 그래서 하루하루가 좀 신나게 이어지는” 그런 세상이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질문: 노무현이 떠난 지 16년이 흘렀다. 하지만 그가 던진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치에서 염치는 가능한가? 현실과 이상의 균형점은 어디인가? 구조적 불의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가? 그는 완벽한 정치인은 아니었다. 때로는 성급했고, 때로는 외로웠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원칙과 현실 사이의 치열한 고민, 권위에 굴복하지 않는 용기,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성찰의 거울이 된다.

사람들은 말한다. 노무현은 실패한 대통령이었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를 지켜주지 못한 것이라고. 결국 그는 “깨어 있는 시민”을 유언처럼 남기고, 그 스스로 시대의 벽을 넘지 못한 채 강물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사라지지 않았다. 노무현은 살아 있다. 당신의 웃음 속에서, 촛불 속에서,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의 손끝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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