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아줄 용기나를 지키기 위해 관계의 마침표를 찍는다는 것

어떤 관계는 메마른 땅에 심은 화초와 같다. 우리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이름으로 부지런히 물을 주지만, 화초는 날마다 시들어간다. 우리는 토양이 척박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한 채, 자신의 정성이 부족하다 자책하며 더 많은 물을 쏟아붓는다. 존중이라는 영양분이 없는 땅에서는 그 어떤 씨앗도 건강하게 뿌리내릴 수 없다는 진실을 마주하기 전까지, 우리는 소모적인 희망을 멈추지 못한다.

관계 속에서 존중이 사라지는 순간은 갑작스러운 폭풍처럼 오지 않는다. 그것은 아주 서서히, 그러나 집요하게 스며드는 무관심의 비와 같다. 나를 향한 농담이라는 이름의 날 선 칼날, 중요한 순간에 외면당하는 나의 이야기, 일방적인 희생을 당연하게 여기는 태도. 이 모든 것은 ‘너는 중요하지 않다’는 침묵의 언어다. 우리는 그 서늘한 언어에 익숙해지면서 점차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이 정도는 참아야 하는 걸까?’ 스스로에게 묻는 동안, 우리의 자아는 서서히 침식된다.

우리는 왜 자신을 잃게 만드는 관계의 끈을 놓지 못하는 걸까? 어쩌면 우리는 익숙함을 안정감으로, 함께한 시간을 의무감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람이 떠난 뒤 찾아올 공허함이 두려워, 이미 텅 비어버린 관계의 껍데기를 붙들고 있는 것이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손실 회피(Loss Aversion)’ 편향은 관계에서도 강력하게 작동한다. 우리는 관계를 지속하며 겪는 고통보다, 그 관계를 끝냈을 때 잃게 될 것들을 더 크게 평가한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관계의 끝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 자신이 완전히 소멸하는 것이다.

관계를 정리하는 것은 패배나 실패가 아니다. 그것은 나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가장 용기 있는 선택이자, 자기 자신을 향한 가장 깊은 사랑의 표현이다. 병든 가지를 잘라내는 것은 나무 전체를 살리기 위한 아프지만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누군가를 떠나는 것은 그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나 자신을 상처받게 내버려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나라는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나의 행복을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주체적인 선언이다.

모든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우리에게는 우리를 시들게 하는 땅에서 걸어 나올 권리가 있다. 그 마침표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나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를 비워낸 그 자리에, 비로소 나 자신과 건강하게 마주할 공간이 생겨난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우리는 타인과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다시 배우게 될 것이다. 당신은 오늘, 당신의 영혼에 어떤 물을 주고 있는가?

 

가장 용감한 사랑은, 어떤 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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