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그 찬란했던 하나됨의 기억과 오늘의 비극

정치는 언제부터 전쟁이 되었을까. 협상과 타협의 예술이어야 할 정치가, 이제는 진영의 깃발 아래 상대를 궤멸시키기 위한 생존 게임으로 전락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 지형은 극단으로 치닫는 대립과 파괴의 수렁에 빠져 있다. 서로의 정책이 아닌,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협치가 아닌 야유로, 대화가 아닌 힐난으로 상대를 짓밟으려 한다.

어느새 우리는 잊고 있다. 대한민국은 본래 그런 나라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갈라진 오늘의 거울 너머로, 하나였던 과거의 빛나는 기억들이 떠오른다.


지금 이 나라에는 ‘다름’을 조율할 리더십이 부재하다.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이 권력을 잡았고, 국민을 편 가르기에 이용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그럴 여유가 없다. 갈등을 줄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며, 대화를 회복할 리더가 필요하다. 통합 리더십이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 속에서 함께 사는 법’을 찾는 능력이다.

 

손에 기름을 묻힌 사람들 – 태안 기름 유출 사고

2007년 겨울, 서해의 작은 항구도시 태안 앞바다에 어둠이 내려앉았다. 기름 유출 사고. 무려 12,547킬로리터의 원유가 바다를 검은 죽음으로 물들였고, 태안의 푸른 해안은 끈적한 절망 속에 잠겼다. 그런데 그때,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학생과 회사원, 할머니와 아이까지, 손에 장갑을 끼고 모래 한 알, 돌멩이 하나하나를 닦아냈다. 하루에도 수천 명씩, 한 달 두 달을 넘어 해가 바뀌어도 사람들은 그곳에 있었다. 기름은 사람의 손으로 닦여 나갔고, 다시 바다는 푸르름을 되찾았다. 우리는 그때 하나였다. 남의 일이 아니었고, 우리 모두의 바다였다.


붉은 물결의 기적 – 2002 월드컵, 광장의 열기

2002년, 그 여름의 광장은 전율이었다. 서울 시청 광장을 넘어 전국 방방곡곡, 심지어 해외까지, 대한민국 국민들은 하나 되어 붉은 티셔츠를 입고 외쳤다. “대~한민국!” 그것은 단지 축구 경기가 아니었다. 거리의 응원은 국민 모두의 심장을 뛰게 했고, 승리의 순간마다 우리는 눈물을 흘렸다. 처음 가본 16강, 그리고 8강, 마침내 4강까지. 그때 우리는 세계를 향해 존재를 드러냈고, 하나의 이름으로 함께 열광했다. 그 광장의 붉은 물결은 단지 축구를 응원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의 자긍심을 응원한 것이었다.


금을 모은 나라 – IMF와 국민적 연대

1997년, 대한민국은 경제 위기 속에 무너져 내렸다. 외환위기. 국가가 빚더미에 앉고, 국민은 일터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그때, 또다시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부가 금을 모으자고 했을 때, 사람들은 결혼반지와 패물, 가보로 내려오던 금붙이를 기꺼이 내놓았다. 3.5톤, 시가 2조 원에 달하는 금이 모였다. 그것은 단지 ‘금’이 아니었다. ‘다 함께 살자’는 연대의 의지였고, 그 의지의 불꽃이 대한민국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마스크로 하나 된 나라 – 코로나19의 초동 대응

2020년 초,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세상을 삼켰다. 마스크 한 장이 생존의 무기였던 시절. 대한민국의 시민들은 묵묵히 줄을 섰고, 마스크 5부제를 따랐다. 자영업자들은 무료로 손세정제를 나눠주었고, 의료진은 번갈아 쓰러지며 방호복 속에서 생명을 지켰다. 국민은 스스로 방역의 주체가 되었고, 세계는 놀라워했다. 우리는 또 하나가 되어 위기를 돌파했고, 공동체의 힘을 증명했다.


촛불과 슬픔의 물결 – 세월호와 촛불집회

2014년 4월, 찬 바다 속에 꽃다운 생명들이 스러졌다. 세월호 참사. 온 국민이 슬픔에 잠겼다. 그날의 상처는 단지 유가족만의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함께 울었고, 함께 물었다. ‘이대로 괜찮은가?’ 그리고 결국 광장에 촛불을 들었다. 수백만의 촛불이 밤하늘을 밝혔고, 침묵으로, 노래로, 그리고 평화로운 연대로 국민은 권력을 바꾸었다. 그 촛불은 단지 정치적 교체가 아니라, 정의와 생명에 대한 국민적 열망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시 분열 속으로 – 진실을 잃은 시대

이처럼 대한민국은 수많은 위기 속에서 하나가 되어왔다. 그러나 지금, 이 땅의 광장은 비어 있고, 서로를 향한 비난의 화살만이 공중에 날아다닌다. 무엇이 진실인지도 알 수 없는 오염된 정보 속에서 우리는 다시금 갈라져 있다. 정치권은 상대를 향해 칼날을 들고, 언론은 이념의 진영에 갇혀 ‘사실’보다 ‘프레임’을 생산한다. SNS는 여론 조작의 전장이 되었고, 국민은 갈등의 불씨 속에서 피로를 호소한다.


이념은 통합되지 않는다, 그러나 리더십은 통합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이념은 각자의 세계관이고, 사상은 서로 충돌하는 법이다. 이를 억지로 통합하려는 시도는 독재로 귀결될 뿐이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통합의 리더십은 가능하다. 그 리더십은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며, 상생을 모색하는 힘이다.

지금 이 나라에는 ‘다름’을 조율할 리더십이 부재하다. 분열을 조장하는 이들이 권력을 잡았고, 국민을 편 가르기에 이용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더 이상 그럴 여유가 없다. 갈등을 줄이고,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며, 대화를 회복할 리더가 필요하다. 통합 리더십이란,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다름 속에서 함께 사는 법’을 찾는 능력이다.


희망은 깨어있는 시민으로부터

정치의 변화는 국민으로부터 시작된다. 깨어있는 시민의 각성이 없다면, 통합의 리더십도 출현할 수 없다. 과거 우리는 그렇게 바꿨고, 그렇게 이겨왔다. 금을 내놓았던 손, 기름 묻은 손, 붉은 티셔츠를 입고 외쳤던 그 목소리들이 다시 모여야 한다.

우리는 그럴 수 있는 나라다. 위기 속에서 기적을 만들던 나라, 광장의 열기와 바다의 눈물이 하나 되어 미래를 열었던 그 힘은 아직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은 다시 묻는다.
과연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 하나됨을 이끌 리더는, 누구인가?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가 기억을 되살린다면, 희망은 다시 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원래 그런 나라였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나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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