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민
여름의 끝자락에서 바람도 밀어내지 못하는 구름이 있다.
그 구름은…
높은 산을 넘기 힘들어 파란 가을 하늘 끝에서 숨 쉬며 바람이 전하는 가을을 듣는다.
저 산 너머 가을은 이미 나뭇잎 끝에 매달려 있다고 바람은 속삭인다.
내 귓가에 속삭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집에는 유난히 가을을 좋아하고 가을을 많이 닮은 엄마가 계신다.
가을만 되면 산과 들을 다니느라 바쁘시고 가을을 보낼 때가 되면 “짚신나물도 보내야 되나 보다.” 하시며 아쉬워하셨다.
그러시던 엄마가 2학년 가을 잦은 기침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큰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해보라는 결과가 나왔다.
우리 가족들은 정말 별일 아닐 거라는 생각에 오랜만에 서울구경이나 해보자며 서울 길에 올랐다.
그러나 예상과 다른 결과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암 3기”라는 판정이 나왔다.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 깨어나야 되는 순간이라 생각이 들 때 아빠가 힘겹게 입을 여셨다…
“혹시 오진 일 가능성은 없나요?”
“평소 기침 외에는.. 특별한 통증도 없었는데요..”
무언가를 골똘히 보던 그때의 선생님은 차갑지도 따듯하지도 않은 미소를 우리에게 보이셨다.
세상의 모든 소음과 빛이 차단되는 것 같은 병원을 우리 가족은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스쳐 지나가도 우리의 시간은 멈추고만 있는 것 같았다.
집에 오는 내내 엄마는 말을 걸지도 하지도 않으며 침묵을 지켰지만 집에 도착하자마자..
토할 것 같은 울음을 저 깊은 곳에서부터 쏟아내었다.
그 울음소리가 너무나 안타까워 나도 소리 내어 울었다.
왜 하필 우리 집에 이런 일이 생겨야만 하는 것일까?
엄마는 한동안 밥도 먹지 않고 밖에도 나가시지도 않고 세상과 하나 둘 씩 담을 쌓기 시작하셨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던 엄마는 어느 날 우리를 떠나서 혼자 살고 싶다 하셨다.
엄마가 우리에게 짐이 될 것 같다고 떠나신다고 하셨다.
나는 그동안 마음속에 쌓아두었던, 울분이 터져 나왔다.
“엄마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엄마는 그러면 여태껏 우리가 짐이었어?”
“가족은 힘들어도 헤어지면 안 되는 거잖아”
“그게 가족이잖아”
“내가 앞으로 더 잘할게”
내 눈물을 보던 엄마가 꼭 안아 주었다.
지금도 그때 왜 엄마가 우리를 떠나려 했는지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엄마를 살리기 위해 아빠는 직장까지 그만두고 공기 좋은 산골로 이사를 가자고 하셨다.
우리가 이사한 곳은 밤이면 쏟아질 듯한 별들을 머리에 두르고 걷는 곳이며 달과 별에게도 마음을 빼앗겨도 되는 오지 산골이다.
이사할 무렵인 늦가을의 산골은 초겨울처럼 춥고 싸늘하게 여겨졌지만 그래도 산골의 인심은 그 추위도 이긴다는 생각이 든다.
어스름한 저녁 동네 할머니가 고구마 한 박스를 머리에 이어 주시기도 하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베트남 아주머니가 봄에 말려 두었던 고사리도 갖다주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엄마가 아프다는 사실에, 함께 아파해 주셨다.
이곳 산골은 6가구가 살고, 택배도 배송되지 않는 곳이다.
그래서 일부러 사람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사람 얼굴도 못 보겠구나 생각할 무렵 빨간색 오토바이를 탄 우체국 아저씨가 편지도 갖다주시고 멀리서 할머니가 보낸 무거운 택배도 오토바이에 실어 갖다주시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정말 감사해 하셨는데 엄마가 암 환자라는 얘기를 들으셨는지 “꾸지뽕”이라는 열매를 차로 마시라고 챙겨 주셨다.
나는 이곳에서 “우리 마음속의 온도는 과연 몇 도쯤 되는 것일까?” 생각해 보았다.
너무 뜨거워서 다른 사람이 부담스러워하지도 않고 너무 차가워서 다른 사람이 상처받지도 않는 온도는 “따뜻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보이지 않아도 마음으로 느껴지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할 수 있는 따듯함이기에 사람들은 마음을 나누는 것 같다.
고구마를 주시던 할머니에게도 봄에 말려두었던 고사리를 주셨던 베트남 아주머니도 수고로움에 마다하지 않고 산골까지 오시는 우체국 아저씨에게도 마음속의 따뜻함이 전해지는 것처럼 말이다.
이 산골에서 전해지는 따듯함 때문에 엄마의 몸과 마음이 치유되고 다시금 예전처럼 가을을 좋아하셨으면 좋겠다고 소망해본다..
“가을은 너무 아름다운 계절 같아” 하시며 웃으셨던 그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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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42:1로 대상을 차지한 13살 소년 정여민 군, 우연히 접한 산골소년의 글이 따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