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을 생각하노라면
수십마리의 양이 단감나무 아래나
논두렁에서 풀을 뜯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퇴비가 쌓인 마당을 지나
백일홍과 능수버들이 늘어진
길을 내려가다 보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다는
옹달샘도 거기에 있었다.
그래서 시장에 내다 파는
딸기바구니에는 검은색 매직으로
‘샘골양집’이라 쓰여 있었고
사람들은 우리집을
당연스레 샘골양집이라 불렀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우리집 안마당에는
옹달샘을 대신할 펌프가 설치됐다.
버드나무 입이 떠다니고
송사리가 헤엄치던 옹달샘도
참 정겨웠지만
안마당의 펌프도
추억속의 풍경속에서
정겹기는 마찬가지다.
펌프는 마중물을 붓고
재빨리 펌프질을 하면
관을 타고 내려가던 물이
땅 속에 흐르는 물줄기를 이끌어
시원하게 땅밖으로 뱉어 놓는다.
탁탁탁, 쏴아 탁, 쏴아 탁.
어린 나는 펌프의 아귀를
손으로 막아 쏟아지는
물의 압력을 느껴보기도 하고
한 여름에는 등을 대고 엎드려
뼛속까지 시린 시원함을
만끽하곤 했다.
이 모든 것은
마중물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는 펌프와 쌍을 이룬 빨간 대야에
늘 다음을 위한 마중물을 남겨 두셨다.
우리 인생의 펌프에도
늘 다음을 위한 마중물을
남겨 두어야 한다.
어떤 사람은
인생의 가슴 아픈 일과
비참한 일을 당할 때
다시 일어날 힘과
인내와 기력까지도
다 잃어버리고 좌절하게 된다.
이때 바로 마중물이 필요하다.
지나친 절망과 좌절,
불평과 불만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에너지를 고갈시켜 버린다.
이때 마중물 한 바가지를 쏟아 부어야 한다.
다시 툭툭 털고 일어서서
심호흡도 하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도 뺏어버린
우리의 일상은
마중물 없는 펌프와 같다.
마중물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새로운 희망의 동력이 되어
사람에게 활력을 공급한다.
신선한 물을
낭창낭창 쏟아 놓게 하는
한 바가지의 마중물은 무엇일까?
한 모금 들이키면
새끼발가락까지 상쾌함이 전달되는
샘물을 뽑아 올릴
마중물은 어디 있을까?
나는 소망한다.
내가 누구를 대하든
그 사람에게 마중물 같은 존재가 되기를.
나는 소망한다.
내 마음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다음에 쓸 마중물까지
모두 쏟아 붓지 않기를.
나는 소망한다.
언제나 나의 심연 깊은 곳에는
영원을 통해 흐르는
멈추지 않는 물줄기가 있음을 잊지 않기를…
-김현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