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의 재판정에서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앞에 두고도 장황한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단 한 문장으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한다. “나는 오로지 진리를 따랐을 뿐이다.” 역사가 플루타르코스는 이 장면을 두고 “침묵이 수사보다 강력했던 순간”이라 기록했다. 해명의 폭포 대신 가늠된 여백이, 당대 청중을 그리고 후세 독자를 흔들었다.
말은 빛과 같다. 밝음이 계속되면 형태가 사라지듯, 언어가 지나치면 의미가 흐려진다. 중요한 회의에서, 감정이 고조된 논쟁에서, 우리는 종종 ‘뭔가를 더’ 말해야 불안을 덜 수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불안은 설명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때로는 한 박자 쉬어야만 맥락이 드러난다.
침묵은 검열이 아니다. 정보를 걸러내고 감정을 식히는 필터다. 링컨은 남북전쟁 당시 참모들의 장황한 보고를 듣다가 “필요 없는 단어는 총알 없는 총과 같다”라고 말했다. 발사음은 요란하지만, 목표를 꿰뚫지 못한다는 뜻이다. 언어의 적중률을 높이려면 화살을 줄이고 활시위를 고르게 당겨야 한다.
그렇다고 침묵을 미신처럼 숭배할 필요는 없다. 침묵이 힘을 얻으려면 타이밍이 필요하다. 잘못과 폭력 앞에서의 침묵은 동조가 되지만, 흩어진 감정의 먼지를 가라앉히는 침묵은 분별력이 된다. “지금 필요한 건 말인가, 여백인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이 질문이 침묵을 무기로 바꾼다.
우리는 어느새 대화창에 즉시 답하는 습관을 배웠다. ‘읽씹’이 무례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답장을 미루는 태도가 상대의 말마저 되돌아보게 한다. 타인의 언어를 돋보이게 만드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침묵이다.
당신은 오늘 몇 마디쯤 줄일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여백에 무엇이 들릴 수 있는가. 말보다 침묵이 더 강한 순간을 발견한 사람만이, 진짜 필요한 말을 정확히 쏠 수 있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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