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이거 안 먹으면 쓰러지지 않을까?”
“혹시라도 내가 지금 조치를 안 하면 병이 더 커지지 않을까?”
“혹시라도 내 자식들에게 부담이 되면 어떡하지?”
이 ‘혹시’라는 단어 하나는 노년층에게 매우 비싼 단어다.
젊은 세대에게 소비는 선택이지만,
노년의 소비는 불안을 진정시키는 의례에 가깝다.
그들이 지불하는 것은 제품이 아니라,
‘마음의 평온’이다.
그래서 노인의 건강 불안은 확신을 사는 게 아니라, 가능성에 돈을 쓰는 구조다.
건강에 대한 ‘의심’이 생기는 순간,
그들은 그 의심을 해소해 줄 어떤 제품, 어떤 약, 어떤 기기를
지체 없이 구매한다.
망하지 않는 사업은, 이 ‘혹시’의 시장에서 자란다.
통증보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온다
국내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2024년 기준 전체 인구의 18.4%를 넘었으며,
통계청은 2035년에는 초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 20% 이상)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 인구는 단지 많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빠르게 돈을 쓰는 세대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노인 건강 실태조사'(2023)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자의 71.3%가 “최근 1년 내 건강기능식품 또는 보조제를 구매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중 60% 이상이 “효과는 잘 모르겠지만 혹시 도움이 될까 봐 샀다”고 답했다.
그렇다.
노인들은 확신보다 ‘가능성’을 산다.
아프지 않아도 불안하고,
괜찮다 해도 의심스러우며,
병원이 아니라도 무언가를 하고 있어야 안심이 된다.
노인의 불안은 타겟이 아니라 출발점이다
이 시장의 본질은 질병 치료가 아니다.
질병이 생기기 전에 “내가 대비하고 있다”는 심리적 행동의 착수감을 파는 것이다.
이는 마케팅적으로 말하면 ‘Self-efficacy 유도 소비’다.
즉, “내가 나를 지키고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가치를 지불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건강식품 광고의 문구는 언제나 정답을 주지 않는다.
“활력을 찾자”, “건강한 하루를 위한 선택”, “노화를 늦추는 습관” 같은
모호하지만 긍정적인 감정 자극형 카피로 가득 차 있다.
확답을 주지 않지만, 선택을 유도한다.
그게 이 산업의 기술이자 생존 방식이다.
1개월 30만 원짜리 관절 영양제, 왜 팔리는가
유명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A사는 2023년
‘초록입홍합’ 추출 성분이 들어간 관절 영양제를 출시했고,
출시 두 달 만에 누적 매출 80억 원을 기록했다.
타깃은 단 하나였다.
“관절이 시큰해지기 시작한 60대 중반 여성”
그들은 자신에게 아직 병명이 떨어지지 않았음에도,
“남들 다 먹는다”는 말에 지갑을 연다.
왜냐하면, 통증보다 두려움이 먼저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능’보다 ‘후기’를 본다.
“먹고 나서 무릎이 덜 아프다더라.”
“친구가 먹고 관절이 좀 나아졌대.”
즉, 과학보다 경험, 데이터보다 사례에 반응하는 소비자군이다.
“혹시”의 가격은 올라가고 있다
노년층은 지갑을 쉽게 여는 동시에,
제품을 한 번 선택하면 오래 유지하는 충성 고객이 된다.
● 2023년 기준, 고령층의 건강식품 평균 재구매 주기는 3.5개월로
20대의 5.8개월보다 훨씬 짧다.
(출처: 농식품부 ‘기능식품 소비 실태 조사’)
그들은 정기배송을 끊고,
TV 홈쇼핑을 통해 동일 제품을 반복 주문하며,
“이걸 안 먹으면 불안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불안은, 시간이 갈수록 더 자주, 더 깊게 찾아온다.
그래서 이 시장은
1회 구매 유도형이 아니라, ‘불안의 구독 모델’로 설계된다.
병원보다 홈트가 먼저다 – 의료의 일상화
‘실버 홈트’라는 키워드를 아는가?
이제는 유튜브에서 “노인 요가”, “시니어 관절 운동”, “뇌혈관 스트레칭”을 검색하면
수천 개의 영상이 뜨고,
조회 수는 수백만 건을 넘는다.
이 영상들에 등장하는 사람은 의사도 트레이너도 아니다.
“자칭 건강전도사” 또는 “간병인 출신 강사”가 많다.
그들이 말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이 운동 안 하면 병원 간다.”
“한 달만 안 하면 다시 시큰하다.”
그리고 이 말은 통한다.
불안은 과학보다 말맛을 타는 감정이기 때문이다.
이 불안은 홈트 기구, 건강 교정기, 셀프 물리치료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셀프케어 제품’을 팔게 만든다.
노년의 소비는 자녀의 안심을 위한 투자다
노인 소비의 핵심은 자신을 위한 것이지만,
또 다른 축에는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으려는 방어 본능’이 있다.
“혹시 내가 쓰러지면 애들이 놀랄 텐데…”
“자식한테 폐 끼치기 싫어서라도 건강해야지…”
이런 생각은 그들로 하여금
실비 보험을 추가로 들게 만들고,
헬스케어 서비스를 정기적으로 구매하게 만든다.
● 2023년 한국의 시니어 실버 보험 신규 가입자 수는
전년 대비 38% 증가(보험개발원 발표)
이 중 60% 이상이 70세 이상 고령자였다.
그들은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보장보다,
자식의 안심을 위해 보험에 가입한다.
즉, 소비 대상은 자기지만, 소비의 주어는 가족인 셈이다.
이 시장은 절대 작아지지 않는다
노인의 건강 불안 시장은 앞으로도 줄어들지 않는다.
오히려 다음 세대가 고령화될수록
그들은 더 많은 정보를 접하고,
더 많은 선택지를 소비하고,
더 예민하고 섬세한 욕망을 드러낼 것이다.
그러면 이 시장은
비타민과 건강식품에서
유전자 기반 예방의학,
AI 기반 실버케어,
고령 맞춤형 정신건강 콘텐츠로 확대될 것이다.
건강의 경계가 병원에서 일상으로,
불안의 대상이 ‘질병’에서 ‘삶의 질’로 이동할수록
이 산업은 망할 이유가 없다.
오히려 더 정교하고, 더 섬세하게, 더 비싸지기만 할 뿐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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