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하지 않는 본능경제 ⑤]
부모는 ‘우리 애만 뒤처질까 봐’ 지갑을 연다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불안, 교육 시장은 불안정한 사랑으로 작동한다

[망하지 않는 본능경제 ⑤] <br>부모는 ‘우리 애만 뒤처질까 봐’ 지갑을 연다<span style='font-size:18px;display: block;'>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반복되는 불안, 교육 시장은 불안정한 사랑으로 작동한다

“이 정도는 해야, 나중에 뒤처지지 않죠.”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 영어, 수학은 끝내야 해요.”
“다들 학원 다니니까, 우리 애만 안 다닐 수 없잖아요.”

이 말들은 겉으로는 ‘정보’ 같지만,
실은 두려움이 만든 의례적 주문에 가깝다.
한국에서 교육비는
논리의 결과가 아니라
불안의 반복 구매 시스템으로 작동한다.

부모는 아이를 사랑하기 때문에
돈을 쓰는 것이 아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쓰게 된다.

사랑은 시작이지만,
비교와 경쟁은 지갑을 여는 진짜 이유다.
그래서 이 시장은 기술이 바뀌어도,
제도가 바뀌어도,
절대 망하지 않는다.

교육비는 사랑의 언어가 아니다. 비교의 언어다.

2023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가구의 월평균 사교육비 지출은
1자녀 기준 49만 2천 원.
2자녀 이상일 경우 평균 86만 원에 달한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지출의 63% 이상이 “자발적 만족”이 아니라
“남들보다 뒤처질까 봐”라는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부모는 “우리 애가 잘되면 좋겠다”보다
“우리 애만 뒤처질까 걱정된다”는 이유로
사교육을 선택한다.
그리고 그 감정은
객관적 성과와 무관하게 계속된다.

사랑은 처음의 동기지만, 불안은 반복의 이유다

아이를 위한 첫 영어유치원 등록은 사랑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두 번째 학원, 세 번째 문제집,
일요일 오전의 논술클래스는
이미 비교가 만든 불안의 리추얼이다.

“다들 한다니까…”
“이 학원은 꼭 보내야 한다더라…”
“이걸 안 하면 고등학교 때 힘들대…”

부모는 자식을 경쟁에 밀어 넣고 싶지 않지만,
밀어 넣지 않으면 “방치한 죄책감”이 더 무섭다.
그래서 사교육 시장은,
이 사랑과 불안 사이에서
정교하게 설계된 감정경제 모델이다.

조기교육은 사랑의 가속도가 아니라, 불안의 촉매다

“우리 애는 세 살에 영어 유치원, 네 살에 수학 선행했어요.”
“지금 창의융합코딩 클래스까지 듣고 있어요.”

조기교육이란 말은 어쩌면
부모의 감정적 알리바이에 가깝다.
‘지금 이 선택이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과 두려움이 동시에 들어 있다.

2023년, 한국 유아교육시장 규모는 약 4조 5천억 원.
(출처: 한국교육산업연구원)
이 시장의 성장은
출생률 감소와는 무관하게,
부모의 ‘밀도 높은 투자’로 인해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아이 하나에게
더 많이, 더 빨리, 더 촘촘하게 투자하는 전략.
그것이 지금의 교육시장이다.

교육 소비는 ‘성적표’를 위한 것이 아니라 ‘명분’을 위한 것이다

부모는 성적을 위해 사교육을 한다고 말하지만,
실은 대부분 자기확신과 사회적 명분을 위해 돈을 쓴다.

“나는 좋은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이 두 문장을 자신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부모는 끊임없이 교육비를 지불한다.

심리학자 브루노 베텔하임은 말했다.
“부모는 자식을 통해 자기의 존재 이유를 확증하려는 유혹을 받는다.”
그 말은 한국 교육 현실에 정확히 맞아떨어진다.
사교육이란 결국,
부모 자신에게 보내는 위로의 청구서이자,
자기 효능감의 거래 영수증
이다.

플랫폼이 바뀌어도 본능은 변하지 않는다

AI 튜터, 메타버스 학습, 영상 강의, 실시간 그룹 수업…
기술은 바뀌지만,
그 안의 감정 구조는 동일하다.

‘불안한 부모’는 어떤 플랫폼이든 이용할 것이고,
‘사랑을 입증하려는 부모’는 어떤 수단이든 결제할 것이다.
그래서 교육 플랫폼은 ‘수업 품질’만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부모의 감정을 설계할 수 있는가”가 핵심이다.

● 뤼이드의 산타토익은 AI 기반 학습 알고리즘보다 “학습 진도율 시각화”로 부모의 만족감을 먼저 잡았다.
● 스마트스터디의 핑크퐁 클래스는 콘텐츠보다 “부모가 곁에서 뿌듯해할 수 있는 구조”를 디자인했다.

이것이 감정 기반 교육 소비의 본질이다.
성과는 나중의 문제다.
지금 당장 부모를 안심시켜야, 수강신청이 이루어진다.

불안이 사라지지 않는 한, 이 시장은 멈추지 않는다

부모는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시작하지만,
‘불안’이라는 감정으로 지속된다.
그리고 이 불안은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계속된다.

초등학교 때는 “기초가 안 되면 어쩌지”,
중학교 땐 “내신이 안 되면 고등학교가”,
고등학교에선 “수능 말고도 비교과가”…
이 모든 불안은 시기만 달라질 뿐,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교육 시장은
단계별로 감정을 설계하고,
시기별로 상품을 리뉴얼하며,
‘다음 불안을 겨냥한 상품’으로 진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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