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숨부터자존심은 나중 문제다

먼저 숨부터<span style='font-size:18px; display: block; margin-top:0px; margin-bottom:4px;'>자존심은 나중 문제다</span>

tvN 드라마 ‘태풍상사’는
1997년, 국가 부도의 차가운 바람이
모든 것을 할퀴던 시대를 비춘다.
그 중심에
갑작스레 무역회사 ‘태풍상사’의 운전대를 잡게 된
스물여섯 청년 강태풍과,
그의 어깨에 자신의 생계를 기댄 직원들이 있다.
드라마는 숫자들이 비명처럼 들리고
신뢰가 휴지 조각처럼 찢겨 나가던 시절,
서로의 온기를 마지막 담요처럼 덮으며
시린 겨울을 견뎌내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화면은 우리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가차 없이 밀어 넣는다.
바닥인 줄 알고 짚은 손끝에
더 깊은 지하실의 냉기가 느껴지는 순간들.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채권자로 돌변해 멱살을 잡고,
평생의 신의를 걸었던 거래처는
하루아침에 등을 돌린다.
붕괴되는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떠내려간다.
술잔에 희석되지 않는 고통이
아버지의 어깨를 짓누르고,
가족의 얼굴에 드리운 그늘은
상처가 되어 아문다.

그 잿더미 속에서,
카메라는 묻는다.
이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
인간을 인간으로 서 있게 하는
마지막 기둥은 무엇인가.
그것은 ‘버틴다는 것’의 존엄이었다.

배가 새는데 의자 배치를 논하지 않는다.
허기진 사람에게 미학을 강요하지 않는다.
자존심·가치관·체면은 중요하지만,
그다음 문제다.
일단 살아야 한다.

위기는 사람을 바꾸기보다 우선순위를 드러낸다.
그래서 규칙은 단순하다.

첫째, 현금흐름을 끊지 말 것.
감정은 유예하고
지출·수입·마감부터 정리한다.

둘째, 몸을 무너뜨리지 말 것.
잠·물·밥이 의사결정력을 지킨다.

셋째, 체면을 빌미로 도움 요청을 미루지 말 것.
“살려달라”는 말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때를 놓치는 게 치명적이다.
위기 앞에서 가장 세련된 태도는
조용한 계산이다.
유예·축소·연장—조건을 협상하고,
숫자를 기록하고,
말은 짧게 한다.

“지금은 버티기, 나머지는 이후”라고 선언하면,
신념은 나중에 더 단단해진다.
품위는 큰소리로 지키는 게 아니라,
쓰러지지 않게 버티는 기술에서 나온다.
살아남아야 갚고,
살아남아야 사과하고,
살아남아야 약속을 지킨다.
그러니 오늘은 숨부터.
내일은 책임.
그다음이 체면이다.

위기에서 자존심은 옵션,
생존은 의무다.
순서가 품위를 만든다—생존 → 책임 → 품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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