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 서문에서 “가장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다”고 적었다. 그는 갈라파고스의 핀치 13종 부리를 관찰하며, 먹이 환경에 따라 형태가 달라졌음을 기록했다. 한 종(種)이 아니라 한 ‘무리’ 안에서도 부리 길이·두께가 제각각이었는데, 이것이 파멸이 아니라 생존의 열쇠가 되었다. 단일 해답이 아니라 상황별 여러 안(案)을 품은 것이 유연함의 자연 모형이었다.
동양 고전에서도 비슷한 상징이 반복된다. 『한비자』는 죽간(竹簡)에 “대나무는 비바람에 굽어도 부러지지 않는다”고 새겼다. 강철보다 약한 것 같지만, 유연성 덕분에 폭풍 후에도 끝내 직립한다. 반면 단단하기만 한 참나무는 한 번의 태풍에 뿌리째 뽑히곤 했다. 강성(剛性)이 아니라 가변성(可變性)이 긴 수명을 보장한다는 통찰이다.
현대 비즈니스 사례로 눈을 돌리면, 사진 공유 앱으로 성공한 인스타그램은 원래 ‘버번(Burbn)’이라는 위치 기반 위스키 기록 서비스였다. 2010년 출시 초기 사용자 지표가 부진하자, 공동창업자 케빈 시스트롬은 8주 만에 전 기능을 폐기하고 사진·필터·해시태그만 남겼다. “핵심 행동 외 전부를 버리는 용기”가 결국 수십억 사용자 플랫폼을 만들었다. 계획은 틀어졌지만, 방향 전환이 기회를 불렀다.
유연함을 삶에 적용하는 세 가지 장치를 제안한다. 첫째, 대비 시나리오: ‘Plan B’가 아닌 ‘Plan Z’까지 언급한 링크트인 리드 호프먼처럼, 최소 두 단계의 후퇴 경로를 미리 그려두면 변화는 공포가 아닌 옵션이 된다. 둘째, 가변적 목표치: 숫자 목표 대신 ‘범위 목표’를 설정하라. 예컨대 하루 10000보 대신 7000–12000보 범위로 잡으면 상황 변화에도 지속률이 높아진다. 셋째, 피드백 루프: 주간 ‘리뷰 & 리셋’ 시간을 확보해 계획과 현실의 간극을 점검한다. 방향 수정은 배를 띄운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브루스 리는 “물이 되어라(Be water, my friend)”라 말했다. 물은 컵에 따르면 컵 모양, 강에 따르면 강 흐름을 따른다. 그러나 증발과 결빙으로 형태를 바꾸어도 본질은 물이다. 유연함은 변신술이 아니다. 핵심을 잃지 않으면서도 형태를 조정하는 기술이다. 부드러움이 강함을 이긴다는 오래된 명제는 여전히 유효하다.
계획이 뒤틀린 오늘, 당신은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가. 방향을 고집하기보다 속성을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가. 고저(高潮)가 갈수록 심해지는 시대, 거센 물살을 거스르려 애쓰기보다 물살과 함께 선회하는 사람이 결국 먼 곳에 도달한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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