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판법, 무엇을 보호하려 했는가다단계의 위선과 탐욕

‘방문판매등에관한법률’, 줄여서 방판법이다. 이 법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주는가? 소비자가 보호받아야 할 만큼 위험한 거래 형태들이 만연해 있다는 증거다.

방판법은 방문판매, 전화권유판매, 다단계판매, 후원방문판매, 계속거래 및 사업권유거래 등 특수판매에 의한 재화나 용역의 공정한 거래를 규정한다.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시장의 신뢰도 제고를 통해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 법의 진짜 의미를 파악하려면 그 핵심 조항을 봐야 한다. 14일간의 청약철회권이다. 계약서를 받은 날부터 14일 이내에 청약철회를 할 수 있고, 계약서에 청약철회에 관한 사항이 적혀있지 않은 경우에는 그 사실을 안 날부터 14일 이내에 철회권을 행사할 수 있다.

왜 국가가 이런 조항을 만들었을까? 일반적인 상거래에서는 이런 보호 장치가 필요하지 않다. 당신이 마트에서 물건을 사거나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할 때 14일간의 무조건 철회권이 있는가? 없다. 방판법의 청약철회권은 이 거래 형태들이 본질적으로 소비자를 기만하고 압박한다는 것을 국가가 인정했다는 뜻이다.

길거리 호객부터 고급 세미나까지, 같은 DNA
방판법의 적용 범위를 보면 그 교묘함이 드러난다. 길거리에서 갑티슈나 행주를 나눠주며 오피스텔 혹은 아파트 모델하우스로 유인하는 행위도 방판법상 방문판매에 해당한다. 호객행위를 통해 홍보관 방문을 유도하여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동일한 구조다.

이들의 수법은 정교하다. 판매업자가 자신의 사업장 외의 장소에서 소비자에게 권유하여 계약의 청약을 받거나, 권유 등으로 소비자를 유인해 사업장에서 계약하는 것이 방문판매의 정의다.

이는 고급 호텔에서 열리는 ‘투자 세미나’나 ‘비즈니스 기회 설명회’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장소만 바뀌었을 뿐, 소비자를 일상 공간에서 벗어나게 해 압박적 상황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다단계 판매와 네트워크 마케팅은 동일 사업에 대한 다른 표현이다. 사전적 정의를 들여다보면 그 허상이 더욱 명확해진다. 다단계 판매는 ‘다단계’ 즉 여러 단계로 판매원을 확장하면서 제품을 판매하는 사업방식이고, 네트워크마케팅은 인적 그물망 조직을 활용해서 물건을 판매하는 사업방식이라고 한다.

하지만 네트워크마케팅에서도 인적 그물망은 결국 다단계 방식으로 만들어진다. 두 사업방식은 같은 것을 다르게 표현한 것일 뿐이다.

더욱 교묘한 것은 이들이 구분을 시도하는 방식이다. ‘다단계 판매는 제품판매가 주된 사업방식이고, 네트워크마케팅은 소비자 또는 사업자 후원이 주된 방식으로 제품판매는 예외적 행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실제 사업 양태를 보면 그 구별은 무의미하다. 본래 다단계 판매 사업자는 하위사업자를 후원함과 동시에 소비자에게 제품을 판매하는 사람들이다. 구조적으로는 모두 피라미드 형태로 동일하다.

언어 조작의 기술
이들이 가장 교묘한 것은 언어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다단계 판매라는 용어가 불법 피라미드와 혼동되어 불신의 대상이 되자,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벗기 위해 네트워크마케팅이란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더 세밀한 구분을 시도한다. ‘다단계판매는 직접 판매 목적이고 네트워크 마케팅은 정보 공유’라는 식으로. ‘판매수수료 개념의 수익’과 ‘광고수수료 개념’으로 나누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단지 포장일 뿐이다. MLM의 구조는 본질적으로 계층적이다. 참가자는 다른 사람을 모집하고, 그 결과 더 많은 사람을 모집한다. 주로 채용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피라미드와 다르지 않다.

방판법이 드러내는 구조적 문제
방판법이 금지하는 행위들을 보면 이 업계의 본질이 드러난다. 강요나 위협으로 계약 체결, 거짓 정보로 거래 유도, 주소나 전화번호 변경으로 계약 해지 방해, 청약 없이 일방적 판매 등이 모두 금지된다. 위반 시에는 최대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의 벌금이라는 무거운 처벌이 기다린다.

왜 이런 조항들이 필요할까? 이런 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법이 금지하는 행위들이 곧 이 업계의 일상적 수법이라는 뜻이다.

더욱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은 다단계로 분류될 경우의 규제 강화다. 방판이 다단계로 분류되면 신고제에서 등록제로 바뀌고 5억원의 자본금을 갖춰야만 영업에 나설 수 있는 등 설립요건이 까다로워진다. 소비자피해보상을 위한 공제조합도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결국 이름이 무엇이든 – 다단계든, 네트워크 마케팅이든, 방문판매든, 소셜 리테일이든 – 본질은 동일하다. 피라미드 구조를 통해 상위 소수가 하위 다수를 착취하는 시스템이다.

이들이 끊임없이 이름을 바꾸는 이유는 간단하다. 기존 용어가 부정적 인식을 갖게 되면 새로운 포장지로 갈아입어 소비자를 현혹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포장지를 아무리 바꿔도 내용물은 그대로다.

방판법이 14일간의 청약철회권을 보장하는 것은 단순한 소비자 친화 정책이 아니다. 이 거래 형태들이 본질적으로 기만적이고 압박적이라는 것을 국가가 인정했다는 증거다.

당신이 다음에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이나 ‘새로운 유통 혁명’에 대한 제안을 받는다면, 방판법의 존재 이유를 떠올려보라. 진정한 혁신은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특별법이 필요하지 않다. 진정한 사업 기회는 14일간의 도망갈 권리를 보장해주지 않는다.

이름을 바꾼다고 본질이 바뀌지는 않는다. 그들이 아무리 화려한 용어로 포장해도, 결국 누군가의 관계를 착취해 누군가가 이익을 취하는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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