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질투는 왜 가장 아픈 감정인가

햇볕은 나눠 쬐면 따뜻하지만,
성공은 나눠 가지면 이상하게도 배가 아프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
자신의 어려움(배고픔)은 참아내면서도
타인의 성공이나 행운(배 아픔)에는
관대하지 못한 인간의 이중적 심리입니다.
이건 인간의 심리 해부도이고,
우리 사회의 욕망 지형도다.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를 이렇게 말한다.
“나는 욕심이 많은 편은 아니야.”
그러나 그 말은 사실이 아니다.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 차이는, 언제 누구를 보느냐에 따라 다를 뿐이다.

배고픔은 개인의 생존 본능이다.
그러나 ‘배 아픔’은 타인의 삶을 바라볼 때, 비교와 욕망이 충돌하며 생겨난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이 속담은
한국 사회, 아니 인간의 심리를 가장 날카롭게 찔러온 말이다.
왜 우리는 남이 잘 되는 걸 보면 아플까?
왜 하필 ‘배’일까?
그것은 우리가 가장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부위이기 때문이다.
심장은 사랑할 때 뛴다지만, 배는 생존의 감각을 총괄하는 곳이다.
배가 아프다는 건, 내가 살아 있는 모든 이유가 흔들린다는 신호다.

이 표현이 자주 사용되는 다섯 가지 장면이 있다.

첫째, 인간 관계에서의 시기와 질투.
형제, 사촌, 친구, 동창.
나와 비슷한 조건에서 출발한 누군가가
먼저 자리 잡고, 부자가 되고, 인정받는 모습을 보면
그 순간, 우리는 이유 없는 통증을 느낀다.
그것은 그 사람이 나빠서가 아니라,
그 사람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둘째, 사회적 불공정에 대한 인식.
‘공정’은 대한민국 사회의 민감한 주제다.
누군가 스펙 없이, 혹은 인맥이나 편법으로 성공했다고 느끼는 순간,
그 배 아픔은 단순한 질투가 아니라 ‘분노’로 바뀐다.
그 감정은 때로 정의를 가장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나는 손해 봐도 괜찮아.
그 사람이 부당하게 얻는 걸 참을 수 없어.”
이 말은 질투가 아니다.
그건 사회적 구조에 대한 분노다.

셋째, 경쟁 심리의 각성.
같은 출발선에 섰던 친구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에 저만치 앞서 나가면,
우리는 두 가지 선택 앞에 선다.
“그걸 보며 더 열심히 할 것인가,
아니면 그를 끌어내리고 싶어질 것인가.”
비교는 욕망을 자극하고, 욕망은 감정을 왜곡한다.
하지만 그 감정의 방향을 내가 어떻게 틀어내느냐에 따라,
배 아픔은 나를 뛰게 하는 추진력이 될 수도 있다.

넷째, 인간 본성에 대한 거울.
정작 내가 힘들 땐 견딘다.
밥을 굶고, 추위를 참아도 산다.
그러나 남이 잘되는 걸 보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흔들린다.
그건 인간이 가진 본능이다.
질투는 인간다움의 결핍이 아니라,
욕망의 방향을 잃은 순간 나타나는 증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모순적이다.
그래서 문명은 계속 진보하고,
감정은 늘 휘청인다.

마지막으로, 사회 비평의 언어.
이 속담은 한국 사회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많은 이들이 불평등한 구조는 참지만,
공정하지 못한 결과는 도저히 못 참는 것이다.
실제로 OECD 조사에서도
한국인은 타인의 ‘정당하지 않은 성공’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높다.
그건 정의에 대한 열망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선 그만큼 사회에 대한 불신이 깊다는 말이다.

“배 아프다”는 감정은 인간의 약점이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그것은 무기가 되기도 하고,
성찰의 거울이 되기도 한다.

누구든 질투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그 질투를 이겨낼 수는 없다.
그 감정에 빠질 것인가,
그 감정을 딛고 일어설 것인가는
온전히 자기 몫이다.

욕망은 나쁘지 않다.
시기심도 그 자체로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다만, 그 감정을 자기 안에서 건강하게 소화할 수 있는
내면의 근육을 키우는 일이 필요하다.

배 아픈 걸 참는 사람.
그 사람은 결국 자기만의 시간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은 멀리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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