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불복종이 오늘을 건드릴 때법 너머의 법

법은 사회의 뼈대다. 그 뼈대가 무너지면 질서는 흩어지고, 혼란이 판을 친다. 그러나 법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구조이기에, 언제든 인간의 한계와 왜곡을 품을 수밖에 없다. 어떤 시대에는 그 법이 오히려 불의의 방패가 되고, 부당함을 합법으로 포장하는 장치가 된다. 문제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다.

성경 속에는 법을 어긴 사람들이 있다. 히브리 산파는 왕의 명령을 거부했고, 다윗은 굶주린 부하와 함께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진설병을 먹었다. 예수는 안식일 규정을 넘어 병자를 고쳤다. 이들은 모두 당시의 법과 규범을 위반했다. 그러나 그 불복종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었다. 그들의 선택은 법의 권위가 정의의 목적과 충돌할 때, 더 깊고 더 근원적인 법을 선택한 행위였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내부고발자는 국가기밀 보호법보다 공익을 우선하며 불법적 권력 남용을 폭로한다. 시민들은 부당한 집회 금지 명령을 거부하고 거리로 나서며, 인도적 구호 활동가는 출입이 금지된 분쟁지역에 들어가 민간인을 구한다. 이들은 모두 문자로 된 법을 위반한다. 그러나 그 위반은 법이 세워져야 할 본래의 이유, 곧 생명과 자유와 정의를 향한 충성에서 비롯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불법’과 ‘불의’가 다르다는 사실을 직면한다. 합법이 곧 정의가 아니고, 불법이 곧 불의가 아니다. 역사는 합법적 불의를 수없이 기록해왔다. 식민지배를 가능케 한 법령, 인종차별을 제도화한 법률, 노동 착취를 묵인한 계약들이 그렇다. 성경 속 법 어김은 이러한 상황에서 무엇이 참된 법인가를 묻도록 만든다. 법의 합법성보다 그 법이 담보하는 가치의 정당성을 먼저 따져 묻는 것이다.

법은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 그리고 인간과 신의 관계망 속에서 작동한다. 그래서 법을 어기는 행위는 단순히 제도를 부수는 일이 아니라, 관계를 재조정하는 일이다. 성경 속 불복종은 새로운 관계의 틀을 만들었고, 현대 사회의 양심적 불복종 또한 마찬가지다. 난민을 막는 법과 인도주의 원칙이 충돌할 때, 저작권 보호와 창작의 자유가 맞부딪칠 때, 국가 안보와 시민 자유가 대립할 때, 우리는 법이 나를 지키는지, 아니면 내가 법을 지키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그러나 불복종은 결코 가벼운 선택이 아니다. 성경 속 산파들은 왕의 분노를 감수했고, 예수는 율법사들의 탄압 끝에 십자가에 달렸다. 오늘날의 불복종도 대가를 치른다. 내부고발자는 직장을 잃고, 시민불복종 운동가는 구속되며, 국제구호 활동가는 외교적 압박과 위험 속에 놓인다. 불복종은 영웅적 낭만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을 끝까지 감당하겠다는 무거운 결의다.

그래서 성경 속 법 어김이 던지는 메시지는 단순한 반항의 권유가 아니다. 그것은 법의 문자를 절대시하지 말고, 법이 존재하는 목적을 보라는 초대다. 우리는 법을 따라야 한다. 그러나 법을 우상처럼 모셔서는 안 된다. 때로는 법을 어김으로써만 지킬 수 있는 가치들이 있다. 그리고 그 가치는 언제나 생명, 정의, 자유라는 더 큰 법 안에 있다.

법이 목적을 잃는 순간, 그것은 폭력의 다른 이름이 된다. 불복종은 파괴가 아니라, 잃어버린 목적을 되찾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우리의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요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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