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셀로나의 작은 실험실에서 연구원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손을 거쳐 완성된 알고리즘은 이제 인간이 손대지 않아도 스스로 진화해 복잡한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부터 당신은 쉬어도 됩니다”라는 문구가 모니터에 떠올랐다. 그가 만든 기계는 자신을 대체했고, 이제 그는 노동에서 자유로워졌다. 이것은 가상의 이야기지만, 우리가 마주할 미래의 한 단면일지도 모른다.
인간은 오랫동안 노동을 통해 부를 창출해왔다. 그러나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으로 노동과 부의 관계는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과연 인간의 노동 없이도 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도래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닌, 인류 문명의 다음 단계를 예측하는 중대한 사유가 되었다.
인공지능과 노동의 종말
팩트체크 결과, 현재의 국내 일자리 10개 중 9개는 불과 6년 후인 2030년에 90% 이상의 업무가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체 가능하다는 국책연구기관의 분석이 발표되었다. 이는 단순히 공장 자동화와 같은 물리적 노동의 대체를 넘어, 텔레마케터, 통번역가, 단말기 판매원, 비서, 심지어 아나운서까지 AI에 의해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종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또 다른 연구에서는 국내 일자리의 10%만이 AI에 의해 대체될 것이며, 오히려 16%는 AI 덕분에 생산성이 향상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상반된 전망이 공존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AI는 사람이 하던 작업 중 특정 부분만을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AI는 한 직무 전체를 대체하기보다는 직무의 10% 이하 과업만을 대체하며, 이러한 변화가 인력 감소로 직결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일자리의 수는 줄어들지 않더라도, 일의 본질은 변화할 것이다.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한다. 우리 인간은 왜 일을 해야 하는가? 원시 시대에는 생존을 위해 일했다. 농경 시대에는 계절과 자연의 순리에 맞춰 일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생산성과 효율을 위해 일했다. 그렇다면 AI 시대에는 어떤 이유로 일해야 할까? 어쩌면 우리는 더 이상 생존을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 창의와 자아실현을 위한 활동으로 ‘일’의 개념을 재정의해야 할지도 모른다.
노동 없는 수입, 패시브 인컴의 확장
“패시브 인컴은 당신이 일상적인 작업이나 지속적인 노력 없이 돈을 벌어다 주는 수익을 의미합니다.” 이는 당신이 자신의 시간을 직접 팔아서 얻는 ‘액티브 인컴’과 대조적이다. 이미 자산가들은 오래전부터 노동 없는 수익을 얻어왔지만, 디지털 시대의 도래로 패시브 인컴의 개념은 더욱 확장되고 민주화되었다.
패시브 인컴의 종류는 다양하다. 주식투자를 통한 배당, 부동산 임대료, 콘텐츠 제작을 통한 광고 및 판매 수익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수입원들은 초기에 상당한 투자나 노력이 필요하지만, 일단 구조가 갖춰지면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 꾸준한 수익을 발생시킨다.
AI 기술은 이러한 패시브 인컴의 개념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금융 분야에서 AI는 알고리즘 트레이딩을 통해 시장 동향과 과거 데이터를 분석하여 사람보다 빠르게 의사 결정을 내리고 거래를 체결할 수 있다. 이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직접 시장을 분석하고 거래하는 노력 없이도 자본 증식이 가능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점은 패시브 인컴이 모든 사람에게 접근 가능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자본이 없는 사람은 투자에서 오는 수익을 기대할 수 없고, 콘텐츠 제작능력이 없는 사람은 그로부터의 수익을 얻을 수 없다. 결국 노동 없이 부를 창출하는 것은 특권에 가깝다. 혹시 이러한 불평등을 해소할 사회적 장치는 없을까?
기본소득: 모두의 패시브 인컴
캘리포니아주의 소도시 스톡턴에서는 125명의 시민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매달 500달러를 지급하는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보편 기본소득’ 정책은 점차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핀란드에서는 2017년부터 2018년까지 실업급여를 받던 2000명에게 무조건적으로 매월 560유로를 주는 실험을 하기도 했다.
기본소득은 단순히 돈을 나눠주는 정책이 아니다. 인도에서 진행된 실험에서는 기본소득을 지급받은 마을이 대조 마을에 비해 소득이 증가하고, 일자리가 늘어났으며, 건강이 개선되고, 학업 성적이 오르며, 부채가 감소했다. 이는 기본소득이 오히려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기본소득이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로봇산업 발달과 이로 인한 실업 문제의 해결책으로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로봇이 대체한 노동자들을 위한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로봇세’를 제안하기도 한다. 로봇이 창출한 부를 사회적으로 재분배하는 개념이다.
내가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만약 기본소득이 보편화된다면, 인간은 노동의 의무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니면 여전히 기본적인 생활만 유지할 수준의 지원에 그쳐 노동은 계속될 것인가? 기본소득이 정말로 ‘일하지 않고도 부를 창출하는 시대’의 시작인지, 아니면 그저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에 불과한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탈노동사회라는 환상과 현실
“노동의 탈상품화는 20세기 이후 복지국가를 꿈꾸는 나라들의 경제 주체들이 적극 추진해 왔던 이슈였고 21세기 현재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노동의 탈상품화로 멎지 않고 ‘사회의 탈노동화(delaborization of society)’로 복지 체제가 바뀌어가는 추세이다”.
노동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는 것, 이는 인류의 오래된 꿈이다. 고대 아테네에서 시민은 노동에서 해방되어 정치와 철학에 몰두할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는 노예제도가 있었지만 말이다. 오늘날 우리는 기술의 발전으로 ‘기계 노예’를 통해 이러한 꿈을 이루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탈노동사회가 정말 가능할까? 현실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맥킨지의 연구에 따르면, AI 및 로봇공학 기술은 2030년까지 전 세계 경제에 최대 $13조의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고 연간 1.2%의 생산성 성장을 이끌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이 부는 어떻게 분배될 것인가?
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부는 주로 기술과 자본을 소유한 계층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AI로 인해 노동자의 이익이 기업의 이익으로 이전될 가능성이 크다는 연구결과도 있고 AI로 인해 아웃소싱이 증가하면서…”라는 우려는 탈노동사회가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을 보여준다.
또한 AI가 모든 노동을 대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변호사, 웹 개발자, 영업 판매 관리자, 산업용로봇 조작원, 약사 등은 AI 노출도가 전반적으로 낮은 가운데 해당 직업의 과업 내에서 AI 노출도 편차가 크다”는 점에서, AI는 이런 직종들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보완하는 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
미래에 대한 성찰: 부와 노동의 새로운 관계
인류 역사에서 노동과 부의 관계는 계속 변화해왔다. 농경사회에서 노동의 결과물은 직접적인 생존과 연결되었다. 산업사회에서는 노동이 임금이라는 매개를 통해 생존과 연결되었다. 그렇다면 AI 사회에서 노동과 부의 관계는 어떻게 재정립될까?
나는 ‘노동 없는 부 창출’이라는 개념보다 ‘노동의 재정의’가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AI와 로봇이 인간의 단순 반복적 노동을 대체한다면, 인간은 더 창의적이고 감성적인 영역에서의 노동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패시브 인컴은 모든 노동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노동의 자유를 제공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목도하고 있는 것은 노동과 부의 분리가 아닌, 노동의 질적 변화와 부의 재분배에 관한 문제일지도 모른다. 기본소득이 보편화된다면, 그것은 완전한 노동 없는 삶이 아닌, ‘원치 않는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제공하는 것이다.
문명의 진화 과정에서 처음에는 불가능해 보이던 것들이 점차 현실이 되어왔다. 인류가 식량 확보에 모든 시간을 쏟아야 했던 시대에, 오늘날과 같은 풍요가 가능하리라고 상상했을까? 마찬가지로, 오늘의 상상이 내일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인공지능과 자동화 기술의 발전은 ‘일하지 않고도 부를 창출하는 시대’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우리의 사회적 선택에 달린 문제이다. 기술이 창출하는 부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 노동의 의미를 어떻게 재정의할 것인지, 그리고 새로운 사회적 계약을 어떻게 맺을 것인지에 따라 우리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중요한 교차로에 서 있다. 기술의 발전이 소수에게 부를 집중시키는 디스토피아로 향할 수도 있고, 모두가 기본적인 부를 보장받으며 자유롭게 삶의 가치를 추구하는 유토피아로 향할 수도 있다. 이 선택은 기술 자체가 아닌, 우리의 집단적 결정에 달려 있다.
인간은 노동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삶의 의미를 찾아왔다. 따라서 ‘노동 없는 부 창출’의 시대가 온다 하더라도, 인간은 여전히 무언가를 창조하고 기여하고자 하는 본질적 욕구를 가질 것이다. 다만 그것이 생존을 위한 강제된 노동이 아닌, 자유로운 선택에 의한 활동이 될 것이다.
아마도 미래에는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닌, ‘하고 싶은 일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세상’이 올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진정으로 꿈꾸어야 할 세상이 아닐까?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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