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예술일까, 아니면 나누어 지배하는 기술일까?
오늘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치판은 분명 후자에 가깝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국민을 이분법으로 나누고, 갈등으로 편을 가르고, 분열을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정치. 그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분열의 정치학이다.
이것은 단지 우연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지금 의도된 분열의 정치학 속에서 길을 잃고 있다.
분열은 어떻게 권력이 되는가
- 적을 만들어야 존재하는 정치
정치는 문제 해결이 아닌, ‘문제의 증폭’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전락했다.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고, 그 적에 맞서야만 자기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믿는다.
- ‘좌익’과 ‘수구’, ‘빨갱이’와 ‘극우’,
- ‘기득권’과 ‘촛불’, ‘친일파’와 ‘토착왜구’.
이런 언어들은 진실을 파악하게 하기보다, 감정을 자극하고 이성을 마비시킨다.
- 분열은 동원과 충성심을 높인다
정치권은 국민이 통합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통합은 비판적 시선을 낳지만, 분열은 맹목적 충성을 낳는다. 따라서 분열은 정치적 동원을 쉽게 만든다.
- 분노하게 하고,
- 두려움을 심고,
- 상대를 ‘악마화’하고,
- 지지층을 ‘군사화’하는 전략.
분열은 권력의 연장선이며, 정치적 생명 유지의 산소다.
- 분열 속 진실은 오염된다
분열된 사회에서 ‘진실’은 의미가 없다. 사실이 아닌 ‘프레임’이 진실을 대체한다.
- “그들은 원래 나쁜 사람이다”,
- “우리가 이겨야 정의다”,
-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를 무너뜨려야 한다.”
이런 논리 속에서 팩트는 감정에 압도되고, 진실은 편향된 프레임에 휘둘린다.
대한민국의 분열, 어디까지 왔는가
- 상대를 파멸시켜야만 존재하는 정치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 갈등은 ‘정책 대 정책’의 싸움이 아니다.
이념도, 비전도 아닌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전쟁’이다.
- 상대를 구속시키고,
- 과거를 끄집어내어 비난하며,
- 어떤 합의도 불가능하게 만든다.
이것은 정치의 사법화, 사회의 극단화, 국민의 피로화를 낳는다.
- 미디어와 SNS, 분열의 확성기
과거에는 공론장이 있었고, 지금은 ‘확성장’만 있다.
- 유튜브 알고리즘은 분노를 먹고 자란다.
- SNS는 짧은 분노를 유통시키고,
- 언론은 클릭을 위해 갈등을 조장한다.
정보의 질보다 정보의 감정성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
- 분열은 경제도 파괴한다
갈등은 정책의 연속성을 파괴한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책은 ‘적폐’로 몰리고, 장기적 투자와 일관성이 사라진다.
경제의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국민은 불안에 떨며 소비를 줄인다.
결국 정치적 분열은 사회적 불안과 경제적 침체를 낳는다.
세계의 사례: 분열의 정치학은 어떻게 작동했나
- 미국 트럼프: “Make America Great Again”이라는 구호 뒤에 숨은 백인-비백인, 진보-보수, 도시-농촌의 철저한 분열 전략. 그는 분열을 통해 핵심 지지층을 결집시켰고, 갈등 속에서 승리했다.
- 브라질 보우소나루: 코로나19 부정, 과학 무시, 사회적 갈등과 종교적 편향으로 권력 유지.
- 러시아 푸틴: 외부의 적(서방)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내부의 반대파를 ‘반역자’로 몰아 통합 대신 억압을 선택.
이들은 모두 분열을 이용해 권력을 연장했다. 그러나 결국 국가의 존립은 흔들리고 있다.
어떻게 분열을 넘어서야 하는가
- 리더십의 전환 – 통합형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통합은 동질화가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는 것이다.
- 상대를 악마로 만들지 않고,
- 다름을 인정하고 경청하며,
- 국민의 피로를 덜어주는 정치.
우리는 갈등을 조장하는 리더가 아니라, 갈등을 치유하는 리더를 선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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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각성 – 분열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치가 분열을 조장할 때, 국민은 그것을 거부할 수 있어야 한다.
진영 논리에 빠지지 않고, 감정보다 사실을 보며, 동원보다 사유를 선택하는 것.
이것이 분열의 정치학에서 벗어나는 첫 걸음이다. -
공론장의 복원 – 미디어와 언론의 책임
진실을 말할 용기, 불편한 진실을 가감 없이 전할 언론의 책임이 절실하다.
가짜뉴스를 넘어서, 팩트와 분석을 제공하는 미디어의 복원이 분열을 막는다.
분열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금의 분열은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다.
국민은 피해자이고, 정치인은 수혜자다.
분열이 깊어질수록 국민은 갈라지고, 정치인은 안정된다.
이 분열의 정치학은, 결국 국민이 깨어날 때 무너진다.
우리는 묻는다.
당신은 분열의 도구로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시대를 여는 주인으로 살 것인가?
이제는 ‘나의 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할 때다.
그것이 분열의 시대를 끝내는 시작이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그 시작을 할 수 있는 나라다.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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