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웅변가 키케로는 “감사는 모든 덕의 어머니”라 했다. 전쟁과 음모가 일상이던 공화정 말기, 그는 ‘하루에 세 번 감사 일기를 쓰라’고 제자들에게 주문했다. 불안이 사무치는 시대였지만, 불안을 밀어내는 방법은 칼이 아니라 문장 한 줄이었다.
20세기 심리학자 로버트 에몬스는 10주간 ‘감사 목록 쓰기’ 실험을 진행했다. 감사 그룹은 그렇지 않은 그룹보다 우울 지수가 30% 감소했고, 주 90분 이상 자발적으로 운동했다. 뇌 스캔 결과 전전두엽의 행복 회로가 강화되었는데, 작은 감사가 신경가소성을 촉발해 행동 에너지로 전환된 것이다.
일본 하이쿠 시인 마쓰오 바쇼는 단 세 줄로 사계절을 노래했다. “청매의 향기 / 우물 물 위에 떠오르네 / 봄이 왔구나.” 한 모금의 냉수, 한 점의 꽃 향기에 반응하는 촉수를 키우니, 거창한 재산이 없어도 ‘봄 전체’를 소유한다. 감사는 외부 투자가 아니라 감각 증폭 장치다.
그러나 감사는 ‘좋은 일 적립표’가 아니다. 고통이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감사하려 하면, 끝내 차례가 오지 않는다. 파울로 코엘료는 『연금술사』에서 “사막에서 별을 바라볼 줄 알면, 사막도 여행의 선물이 된다”고 썼다. 사막이 초록지대로 변하는 마법이 아니라, 시선이 바뀌어 황량함 속에도 별빛을 수확하는 기술이다.
실천 툴킷을 간단한 것 같다. 첫번째는 잠들기 전, 오늘의 풍경·사람·감정을 스캔해 감사것 3가지를 속삭인다. 두번째는 감사 트리거를 당기는 것이다. 휴대폰 알림에 다섯 글자 “무엇이 고마운가?”를 심어 하루 세 번 울리게 헤보자. 마지막으로 리디렉션이다. 예상치 못한 불편(지하철 지연, 비 예보)을 ‘감사 소재’로 리포맷한다. “지연 덕분에 생각 정리 시간 확보”처럼 관점을 재배치한다.
감사가 부족한 삶은 거대한 보물창고에 불을 끈 채 서성이는 것과 같다. 물건이 가득해도 손끝으로 더듬기만 하니 풍요를 체감하지 못한다. 스위치를 켜면, 이미 있던 물건이 모습을 드러낸다. 스위치가 바로 감사다.
오늘 밤 불을 켜라. 빈 주머니라도, 손 안에 우주를 올려놓을 수 있다. 가진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문장을 머리가 아닌 신경세포가 이해하는 순간, 삶은 한 톤 밝아진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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