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사라진 문명과 현대 문명의 연결고리 1

한때 인간은 별을 신이라 믿었고,
그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돌을 쌓고 언덕을 깎아냈다.
그곳이 바로 괴베클리 테페였다.

문명이 시작된 자리는 도시도, 농경지도 아니었다.
아직 곡식을 갈지 않았던 인류가
먼저 한 일은 돌을 세우고, 동물과 신의 형상을 새기는 일이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움직임이 아니라,
의미를 향한 첫 몸짓이었다.

문명은 언제 시작되었는가?
돌을 깎은 날일까,
말을 기록한 날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함께 모여 신을 상상한 날일까?

괴베클리 테페는 1만 년 전의 유적으로,
이집트보다 6천 년 앞서며
문자의 흔적도 없고, 농경의 자취도 없다.
하지만 그곳에는
기억보다 오래된 상상이 남아 있다.

말 없는 돌기둥들이 원형으로 배치되어 있고,
그 표면에는 표범과 독수리, 뱀과 전갈,
죽음을 예고하는 상징들이 새겨져 있다.

누가 그것을 만들었는지,
왜 만들고 왜 매몰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그 흔적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우리는 함께 있었다.”

문명이란 도구로 시작하지 않는다.
문명은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우리는 여기에 있는가?
무엇을 믿고, 어디로 가는가?

이런 질문들이
신화와 제사, 공간과 상징을 만들고
그 위에 도시와 국가와 역사라는 이름을 얹는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도
그 문명은 여전히 살아 있다.

우리는 여전히 신전을 짓는다.
그 이름이 ‘본사’이든, ‘캠퍼스’이든, ‘커뮤니티’든 간에
우리는 중심이 되는 공간을 만들고
그 중심을 기준 삼아 삶을 배열한다.

우리는 여전히 상징을 새긴다.
로고, 태그, 인증 마크.
그것은 설형문자의 후손이고,
인더스 인장의 사촌이며,
디지털 시대의 ‘마법의 표식’이다.

우리는 여전히 시간을 관리한다.
스케줄러, 캘린더, 타임라인.
수메르의 60진법은
오늘도 우리의 손목과 알람 속에 살아 있다.

그렇다.
문명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형식을 바꾸었을 뿐이다.

과거는 먼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
당신이 걷는 도시의 길 위에도
당신이 들여다보는 화면 속에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문명은 시작된 적이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끝난 적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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