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을 넘어선 파트너십의 현실학사랑 이후의 삶

당신은 지금 누군가와 결혼을 꿈꾸고 있는가. 그렇다면 잠시 멈춰 서서 생각해보자.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사랑=결혼’이라는 개념이 인류 역사에서 얼마나 짧은 기간 동안만 존재해왔는지를. ‘사랑=결혼’—즉, 개인의 감정과 로맨스를 결혼의 주요 동기로 삼는 문화—가 인류 역사에서 본격적으로 보편화된 것은 불과 200~300년 전, 즉 18~19세기 이후의 일이다.

18세기 유럽에서 계몽주의와 산업혁명, 도시화, 개인주의의 확산이 이루어지면서, 젊은이들이 부모나 가문의 의사보다 자신의 감정과 선택을 중시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사랑 결혼’이 점차 이상적 결혼의 모델로 자리 잡았다. 이 변화는 문학·예술의 대중화와도 맞물려, 사랑과 결혼이 동일시되는 낭만적 신화가 널리 퍼졌다.

19세기 말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에게 결혼은 생존의 문제였다. 여성에게는 경제적 보호막이었고, 남성에게는 가계 계승의 수단이었다. 가문 간의 결합, 정치적 동맹, 경제적 이익—이것들이 결혼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였다. 사랑? 그건 결혼 이후에 천천히 기를 수 있는 감정쯤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20세기 들어 모든 것이 바뀌었다. 산업화와 개인주의의 확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가 늘어나면서 결혼의 패러다임 자체가 전복됐다. 이제 우리는 ‘사랑하니까 결혼한다’는 명제를 의심 없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말 그래도 될까.

감정의 덫에서 벗어나기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사랑에 빠지는 것과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의 황홀감과 도파민의 급상승은 생물학적으로 2년을 넘기기 어렵다는 게 과학의 정설이다. 그 이후엔 무엇이 남는가.

나는 수많은 커플들이 ‘사랑이 식었다’며 헤어지는 모습을 봐왔다. 그들은 처음의 설렘이 사라진 것을 관계의 실패로 해석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애초에 감정에만 의존한 관계 설계 자체가 불안정했던 것이다.

존 고트만의 40년간 결혼 연구 결과는 명확하다. 지속되는 결혼의 핵심은 로맨스가 아니라 ‘우정’이다. 서로를 존중하고, 갈등을 건설적으로 해결하며, 공통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파트너십. 이것이 진짜 결혼의 토대다.

현실적 결혼의 조건들

그렇다면 현실적인 결혼은 어떤 조건들을 갖춰야 할까. 먼저 경제적 독립성이다. 사랑만으로는 집세를 낼 수 없고, 아이를 키울 수 없다.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

다음은 가치관의 일치다. 종교관, 자녀관, 직업관, 돈에 대한 태도—이런 핵심 가치들에서 완전히 다른 방향을 보고 있다면 감정만으로는 메울 수 없는 골이 생긴다. 물론 모든 것이 똑같을 필요는 없다. 다름을 인정하되, 타협 가능한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세 번째는 갈등 해결 능력이다. 결혼은 매일 작은 협상의 연속이다. 저녁 메뉴부터 아이 교육방침까지, 수없이 많은 의견 차이를 조율해야 한다. 감정에 휩쓸려 소리를 지르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는 사람과는 40년을 함께 살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사랑의 기술

하지만 이 모든 현실론이 사랑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사랑의 정의를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선택이다. 매일 상대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하는 의지의 행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 종류의 사랑을 구분했다. 쾌락에 기반한 사랑, 이익에 기반한 사랑, 그리고 덕에 기반한 사랑. 현대인들은 대부분 첫 번째 단계에서 멈춘다. 하지만 진짜 결혼은 세 번째 단계에서 시작된다. 서로의 성장을 돕고,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격려하는 관계. 이것이 지속가능한 사랑이다.

당신에게 묻고 싶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과 10년 후, 20년 후에도 함께 성장할 수 있겠는가. 서로의 꿈을 응원하고, 실패했을 때 일으켜 세울 수 있겠는가. 경제적 어려움이 와도, 건강에 문제가 생겨도, 변함없이 파트너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실천을 위한 제안

현실적인 결혼을 준비하려면 구체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먼저 솔직한 대화부터 시작하라. 돈, 아이, 일, 가족—민감한 주제들을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다뤄라. 서로의 기대치와 한계를 명확히 하라.

두 번째로 각자의 경제적 독립성을 확보하라. 결혼 후에도 개별 계좌를 유지하고, 가계 운영 방식을 미리 협의하라. 사랑한다고 해서 경제관념까지 흐려져서는 안 된다.

세 번째로 갈등 해결 방법을 연습하라. 작은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화하는지 관찰하라. 상대방의 말을 끝까지 듣는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가, 합리적 타협점을 찾으려 노력하는가.

새로운 결혼의 패러다임

21세기의 결혼은 19세기의 생존 결혼도, 20세기의 로맨스 결혼도 아닌 제3의 길을 걸어야 한다. 감정적 만족과 현실적 안정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성숙한 파트너십. 이것이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새로운 결혼관이다.

칸트는 “감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은 동물적이고, 의무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 인간적”이라 했다. 결혼도 마찬가지다. 순간의 감정이 아니라 평생의 책임감으로 선택해야 한다.

사랑은 시작일 뿐이다. 진짜 결혼은 그 이후에 시작된다. 매일 서로를 선택하고, 함께 성장하며, 어려움을 헤쳐나가는 과정. 그 여정에서 발견하는 깊은 신뢰와 동반자 의식—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완성이다.

 

인류 역사상 ‘사랑 결혼’은 불과 2~3세기 전 등장한 새로운 개념이다. 이전의 결혼이 생존과 경제, 정치적 목적이었다면, 현대인들은 감정에만 의존한 결혼을 선택한다. 하지만 도파민의 급상승은 2년을 넘기기 어렵고, 진정한 결혼의 지속성은 로맨스가 아닌 우정과 파트너십에서 나온다. 경제적 독립성, 가치관의 일치, 갈등 해결 능력이 현실적 결혼의 핵심 조건이다. 사랑을 감정이 아닌 선택으로 재정의하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성숙한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 21세기 결혼은 감정과 현실의 균형을 이루는 제3의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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