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대신, 마주 앉아 침묵할 수 있는 사람삶이란 무엇인가

삶은 길이 아니라, 틈이다.
이음새 없는 목적과 계획으로 쭉 뻗은 길이 아니라,
자꾸만 어긋나고, 끊어지고, 엎어졌다가
어느 날 문득 이어지는 틈의 연속이다.

누구는 말한다.
삶은 축복이라거나, 고해라거나, 여정이라거나.
그 모든 정의는 틀리지 않다. 다만 부족하다.
삶은 설명되지 않는다. 살아질 뿐이다.

어릴 적엔 삶이란 커다란 의미를 찾는 일이라 믿었다.
그러다 한 번 크게 부서지고 나니,
삶은 누군가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잡고 있는 일이라는 걸 알았다.
다시 한번 깊이 떨어지고 나니,
잡았던 그 손이 때로 나를 놓치기도 한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사람은 끝없이 묻는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가?”
그러나 정작 그 물음엔
‘무엇 없이도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뿌리깊은 답이 있다.

삶은 늘 한 발 늦는다.
마주친 순간엔 몰랐고, 지나간 뒤에야 가치를 안다.
그래서 삶은 늘 해석의 문제다.
내가 어제를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오늘의 언어를 바꾸고,
그 언어가 내일의 태도를 만든다.

삶은 결국 ‘누구와 함께 있었는가’로 남는다.
무엇을 이뤘는가보다, 누구를 떠나보냈는가보다,
결국 끝까지 옆에 있어준 사람의 체온으로 기억된다.

삶은 깊이를 드러내지 않는다.
표면은 때로 화려하고, 때로 평온하고,
때로는 진흙탕처럼 흐리지만,
그 아래엔 누구도 모르는 금이 간 마음,
말 한 마디에 무너질 수도 있는 연약함이 흐르고 있다.

나는 삶이란 질문 앞에 늘 무례했다.
마치 다 아는 듯 정의하고,
마치 다 겪은 듯 충고하고,
마치 다 이해한 듯 정리하려 했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삶이란, 누군가의 말 앞에서 조용히 귀 기울이는 것.
누군가의 눈물 앞에서 같이 울고,
누군가의 상처 앞에서 침묵하는 것.

삶은 거창한 문장이 아니라,
그 문장을 말 없이 들어줄 누군가와 마주 앉아
잠시 함께 있는 시간이다.

그 침묵이 길수록,
그 삶은 단단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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