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상실과 치유의 여정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 상실과 치유의 여정

‘보’에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다. 기력도 점점 바닥으로 떨어지는 걸 느낀다. 아내의 향기를 보관하려고 스카프를 병 속에 넣어뒀는데, 이젠 병뚜껑을 여는 것도 쉽지 않다.
보의 고요한 일상은 매일 찾아오는 요양사에 의해 잠시 깨어질 뿐이다. 다행히 곁에는 오랜 반려견 식스텐이 아직 남아 있다.
아들은 보가 죽기 전에 반려견을 다른 곳에 보내려고 한다. 아들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삶이 다하기 전에 관계를 회복하고 싶지만 아들은 그런 마음을 모른다.
식스텐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의 감정은 크게 흔들리고, 그는 삶의 여러 순간을 되돌아본다. 나는 어떤 아버지였나. 나는 어떻게 사랑을 표현했던가.
보는 시간의 위협에 주저앉지 않는다. 그는 남은 시간 동안 삶의 문제들을 잘 풀어낼 수 있을까.

작가는 할아버지를 방문하면서 우연히 오래된 메모를 발견한다. 요양보호사가 남긴, 할아버지 생애의 마지막 몇 년 동안의 기록들인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할아버지를 찾아 청소와 식사, 목욕 등을 도우면서 작가는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흥미진진한 인생 이야기에 매료되고, 나아가 자신이 인생 이야기에 그토록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전히 할아버지 덕분이라고 훗날 인터뷰를 통해 고백한다. 노인을 향한 고정관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다. 자신의 존엄성과 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고군분투하는 인간의 위대한 마지막 모습들. 이 소설은 바로 그렇게 쓰여졌다.
소설은 주인공 ‘보’가 삶의 마지막을 목전에 두고 내내 어려웠던 아들과의 관계를 차차 풀어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리며 독자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세대간의 소통, 가족간의 사랑, 오랜 동료와의 우정, 뜨거운 화해와 온화한 작별의 과정을 사실적이면서도 감동적으로 보여주며, 소설은 인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미처 나누지 못한 서로에 대한 진심
더 늦기 전에 꼭 전하고 싶었던 말

“그를 내 곁에 두고 그를 바라보며 그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비록 내가 겉으로는 심술궂고 무뚝뚝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마음속으로는 항상 그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더 늦기 전에”. _P. 441

 

‘보’에게도 물론 아버지가 있었다. 자신을 한 번도 따뜻하게 바라봐주지 않던 엄격하고 매몰찬 아버지. 결국 보는 삶에서 그를 지워버렸다. 자신이 사랑했던, 어렸을 적에는 마치 형처럼 의지한, 이제는 늙고 병들어버린 개 ‘버스터’를 향해 그가 몰래 총구를 겨누던 바로 그 순간부터.
아버지에게서 등을 돌린 뒤, 보는 원하는 방식으로 자신만의 삶을 살았다. 임종을 앞두고 자신을 마지막으로 보고 싶어 하는 아버지를 끝내 찾아가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사실 그가 자신을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는 내내. 자신을 인정해주고 자랑스러워하는 아버지의 눈빛을 바랐던 것이다.
시간은 흘러, 보는 자신에게서 반려견 식스틴을 떼어놓으려는 아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아들과의 관계는 아버지와 다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그 역시 아들에게 평생 단 한 번도 해주지 못했던 말. “나는 네가 정말 자랑스러웠다”는 바로 그 말.
보는 아들과의 관계를 회복해나갈 수 있을까. 미처 나누지 못한 진심을 용기내어 전하며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따스한 곳을 향해 떠나는 한 노인의 아름다운 여정이 소설에 담겨 있다.

“우리 대부분은 언젠가 누군가와 영원히 작별해야 할 것이고 그것은 비극이지만, 이 책이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지 모른다.” _스타방거 아프텐블라

 

나는 스카프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으면서 타들어가듯 아픈 마음을 감은 눈꺼풀 뒤에 숨겼다. 나이가 들면 눈에 눈물이 고이는 것이 정상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부분의 기억 속에는 눈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것 같다. _P. 22

 

나는 쉰일곱 살이 된 우리 아들을 바라보았다. 이 세상에 한 인간을 낳아 기르는 것과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당신이 임신하기 전에는 아무도 이것에 대해 말해준 사람이 없었다.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이를 갖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일이 어떻게 이처럼 복잡한 일로 변할 수 있는 것일까? _P.244

 

리사 리드센(Lisa Lutz)의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The Day the Birds Went South)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다. 그것은 기억과 시간, 그리고 상실의 잔향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는 작품이다. 이 책은 ‘떠남’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서사의 층위를 쌓아가며,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운데 독자들에게 깊은 감정적 울림을 선사한다.


떠나는 것과 남아있는 것

책의 제목에서도 드러나듯, ‘새들이 남쪽으로 간다’는 것은 단순한 철새의 이동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변화와 상실, 그리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아가는 인간의 본능적인 움직임을 상징한다. 주인공은 갑작스럽게 사라진 가족을 찾으며, 동시에 자기 자신과도 재회하는 여정을 떠난다.

우리는 삶 속에서 많은 것을 떠나보낸다.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 과거의 어떤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리드센은 이러한 ‘떠남’이 단순한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 될 수도 있음을 시사한다. 떠나는 자와 남아있는 자, 그리고 그들이 나누었던 시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게 만든다.


기억이 우리를 속일 때

이 책이 흥미로운 또 다른 이유는 ‘기억’이라는 요소가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한다는 점이다. 주인공은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스스로의 기억을 신뢰할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한다. 이는 단순한 미스터리적 장치가 아니라, 인간의 기억이 얼마나 쉽게 변질되고 조작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기억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감정과 시간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우리는 과거를 떠올릴 때 종종 그것을 ‘사실’로 인식하지만, 실상은 우리의 감정과 필요에 의해 변형된 기억일 가능성이 크다. 책은 이러한 기억의 불완전성을 탐구하며, 진실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이 과연 ‘진짜’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진실을 찾는다는 것의 의미

소설 속 인물들은 진실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인다. 그러나 그들이 찾는 ‘진실’이란 과연 무엇일까? 종종 사람들은 진실을 찾는 과정에서 더 큰 혼란에 빠지기도 하고, 때로는 ‘알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마주하기도 한다.

책은 단순한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진실이란 명확한 실체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임을 보여준다. 독자는 주인공과 함께 혼란을 겪고, 때로는 확신을 잃기도 하지만, 결국 ‘자신만의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을 경험하게 된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는가?

새들이 남쪽으로 가는 날은 단순한 미스터리 소설이 아니라, 우리 삶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떠나는 것과 남아있는 것, 기억의 불완전함과 진실을 찾는 여정. 결국, 이 모든 요소들이 모여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설을 덮은 후에도, 이 질문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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