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해와 선입견 — 듣지 않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말의 흐름을 막는 내부의 ‘자동 번역기’를 경계하라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종종 이런 사람을 만난다. 말을 꺼내기 무섭게 고개를 끄덕이며 “알아, 무슨 말 하고 싶은 건지.”라고 말하는 이들. 혹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자신의 판단을 개입시켜 논지를 꺾어버리는 사람들. 그들은 상대방을 듣는 게 아니라, 스스로의 ‘선이해(先理解)’—이미 마음속에서 이해를 마친 상태—를 반복적으로 재생하는 데 바쁘다.

이러한 선이해는 보통 오래된 경험, 고정관념, 학습된 감정반응에서 기인한다. 그들은 새로운 말이나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과거의 기억이나 맥락 안에서 ‘이미 아는 것’으로 덮어씌운다. 그리고 그 덮개는 종종 선입견이라는 이름으로 굳어져 있다.

‘듣는 척’ 하지만 사실은 ‘기억을 검색’ 중이다
선이해가 강한 사람은 상대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지 않는다. 말이 시작되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이미 과거 데이터베이스가 돌아간다.
“아, 이런 말투는 저번에 나를 비난했던 그 사람이랑 비슷해.”
“저런 이슈에 관심 있는 사람은 원래 편향돼 있지.”

그리하여 듣는 시간은 고작 몇 초에 불과하고, 이후의 시간은 자기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한 ‘추론과 검색’으로 채워진다. 이들은 진실보다 자기 판단에 충실하고, 설득보다 방어에 능하다.

대화가 아니라 ‘입증의 자리’로 만들어버린다
이들은 타인의 이야기를 ‘설명’이 아닌 ‘입증’으로 전환시킨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건 네 시각이지.”
“내가 봤을 땐 그건 좀 편향됐어.”
처음부터 상대방이 틀렸다는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합리적인 말도 소용없다. 대화는 싸움이 되고, 정리는 왜곡이 된다. 결국 ‘무엇을 말했느냐’보다 ‘누가 말했느냐’에 따라 판단이 갈린다.

‘패턴 인식’이라는 오류 — 뇌는 항상 게으르다
인지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은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인간의 뇌가 얼마나 ‘패턴’을 찾고 싶어하는지를 지적한다. 뇌는 불확실한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가능한 빨리 명확한 구조를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대충의 정보를 바탕으로 ‘그럴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려버린다.
이는 효율적이지만 동시에 위험하다. 선이해는 이 자동화된 판단기제의 산물이다. 뇌가 덜 일하고 싶은 욕망이 결국은 진실을 놓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을 ‘대상화’하면 듣지 않게 된다
선입견이 많은 사람은 상대방을 하나의 ‘정체성’으로 묶는다.
“아, 그 사람은 보수야.”
“쟤는 원래 말이 많아.”
“교회 다니는 사람은 그렇지 뭐.”
그 순간 상대는 하나의 ‘유형’이 되어버리고, 그 안에서 말하는 모든 것은 이미 짐작 가능한 클리셰가 된다. 이로써 개별성이 사라지고, 살아 있는 목소리는 납작한 낙인으로 대체된다. 이 얼마나 위험한 사고인가.

진짜 이해는 ‘보류’에서 시작된다
선이해와 선입견은 이해를 방해하는 내적 장벽이다. 진정한 이해는 판단을 ‘보류’하는 능력에서 시작된다. “내가 지금 이해한 것이 정말 맞는가?”, “이 사람은 왜 이런 말을 했을까?”라는 질문을 자문할 줄 아는 사람이, 비로소 남의 말을 자기 생각 바깥에서 이해할 수 있다.

독일 철학자 한스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는 ‘선이해’를 모든 이해의 전제라고 보았다. 우리는 누구나 과거의 맥락, 언어, 문화 속에서 사유하며, 그 기반 위에서 타인을 이해한다. 하지만 이 선이해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대화 속에서 수정될 수 있는 전제다. 문제는 그것을 고정된 결론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선입견이 강한 사람들은 지적 자존감이 높은 경우가 많다. 본인의 판단이 논리적이고 경험에 기반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사람일수록 더 쉽게 오류에 빠진다. 왜냐하면 ‘의심하지 않는 사고’야말로 가장 위험한 사고이기 때문이다.
당신이 너무도 확신에 차 있다면, 그 확신 자체를 먼저 의심해보라.

모든 사람은 선이해를 통해 세상을 이해한다. 문제는 그 선이해가 ‘닫힌 해석’이 되는 순간이다.
말이란 말한 사람의 것이지만, 듣는 순간 듣는 이의 해석에 좌우된다.
우리는 상대의 말 속에서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무엇’을 만나기 위해 귀를 기울여야 한다.
그게 진짜 대화다.

 

선입견이 강한 사람은 대화에서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미리 해석한 프레임에 끼워 맞추며 판단한다. 이는 대화의 흐름을 왜곡하고 진실한 소통을 가로막는다. 진정한 문해력과 소통은 판단을 보류하고 상대의 말을 열린 마음으로 경청할 때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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