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아래의 맹세청렴과 고결의 상징

“송하맹학(松下盟鶴)” ― 소나무 아래에서 학과 맺은 맹세라는 뜻으로, 청렴하고 고결한 마음가짐을 상징한다. 이 말은 중국 진(晉)나라의 고사에서 비롯된다. 도연명(陶淵明)과 같은 은일(隱逸) 지사들이 소나무와 학을 벗삼아 세속의 권력과 부귀를 거부하고, 자연과 더불어 맑은 뜻을 지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이후 학과 소나무는 곧 청백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옛 그림을 떠올려 보라. 설경 속에서 푸른 소나무가 꼿꼿이 서 있고, 그 아래에서 흰 학이 긴 목을 치켜든다.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그 풍경은 이미 하나의 선언이다. 권력의 장막 속에서 주고받는 술잔 대신, 바람과 눈을 벗삼아 맹세를 나눈다는 것. 세속의 탐욕을 넘어, 고결한 정신을 지키겠다는 다짐이다.

역사 속에서도 송하맹학의 정신을 품은 이들이 있었다. 고려의 충신 정몽주가 그러했고, 조선의 청백리로 기록된 맹사성, 황희도 그러했다. 이들은 권세 앞에서 굽히지 않았고, 부귀 앞에서 마음을 팔지 않았다. 세속의 다툼을 벗어나 자연과 더불어 자신을 단련한 사람들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송하맹학은 어떤 의미일까. 현대 사회는 권력이나 재물이 직접 눈앞에 놓이지 않아도, 더 교묘한 방식으로 유혹을 던진다. 타인의 인정, 사회적 지위, 작은 이익까지도 우리의 청렴을 흔든다. 그럴 때 필요한 것은 소나무 아래의 맑은 맹세다. 누구의 시선이 없어도, 내 안에서 나와 약속할 수 있는 절개.

송하맹학은 결국 스스로의 마음에 대한 맹세다. 남이 지켜보지 않아도 학처럼 고고히 서고, 소나무처럼 꿋꿋이 푸름을 잃지 않는 삶. 그것이야말로 시대를 넘어선 청렴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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