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시간을 말한다.
지금 몇 시인지, 며칠이 남았는지,
언제 시작하고 언제 마감해야 하는지.
하지만 묻지 않는다.
이 시간은, 누구의 시간인가?
문명이 시작되기 전,
인간은 하늘을 먼저 바라보았다.
별과 달, 그리고 계절.
그들의 삶은 하늘의 호흡에 맞춰 조율되었다.
수메르 사람들은
하늘을 관측했고,
달의 주기를 계산해
시간을 60으로 나누었다.
1시간 60분, 1분 60초—
오늘 우리가 쓰는 시간의 단위는
그들의 별빛 계산법에서 왔다.
이집트에서는
나일강이 해마다 넘실거리며
시간을 알렸다.
홍수, 파종, 수확—
그들은 1년을 세 개의 계절로 나눴고,
그 계절의 예측 가능성이 곧 왕의 권위였다.
시간을 모른다면 기근이 온다.
시간을 틀리면 신의 노여움이다.
그래서 파라오는 시간의 통역자였다.
하늘의 시계를 읽는 자,
즉, 세상의 주인이었다.
마야는 시간의 철학자였다.
태양력, 신성력, 장주기력…
수천 년의 시간을 엮어
그들은 우주의 리듬을 이해하려 했다.
왕은 단순한 통치자가 아니라
시간을 연주하는 지휘자였다.
중국은 달랐다.
24절기와 72후.
우리는 지금도 ‘입춘대길’이라 쓰며
계절의 문턱을 기념한다.
하늘과 땅과 인간이
조화를 이룬다는 믿음 속에
시간은 곧 정치의 근거가 되었다.
역법을 바꾸는 자가
세상의 주인을 자처했고,
달력을 선포하는 자가
왕조를 열고 닫았다.
이렇듯,
시간은 언제나 정치적 자산이자,
종교적 질서이자,
문명적 권력의 축이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스케줄러로 하루를 설계하고,
캘린더 알람에 따라 움직이며,
정해진 마감과 회의 시간에 맞춰
자신을 ‘조정’한다.
시간은 더 이상 하늘의 것이 아니다.
시간은 시스템의 것이고,
플랫폼의 것이며,
때로는 회사의 것이다.
우리는 시간의 주인이 아니라
시간의 사용자가 되었다.
클릭 한 번으로 ‘남은 시간’을 확인하고,
누군가 만든 ‘시간 구조’ 안에서
살아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까지를 ‘우리의 시간’이라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이 문명의 시계는
과연 누구를 향해 울리고 있는가?
문명은 시간을 분할하고,
시간은 권력을 배분한다.
그러니 묻는다.
“지금 당신의 시간은 누구의 것인가?”
“그리고 당신은 그 시간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블루에이지 회장 ·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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