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신에 대한 회의와 깊은 장고(長考)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쉽게 털어놓지 못하는 고민이었다.
어느날 아침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한 사람이 내게 연락을 해왔다. 그녀는 한때 목회를 하던 사람이었지만, 신에 대한 회의가 깊어져 결국 교회를 떠났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녀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신을 향한 기도는 계속되었지만, 점점 더 공허함을 느끼고 있었다. 신을 믿지 않는데 왜 기도하고 있을까? 그녀는 혼란스러웠다.
그날 새벽, 그녀는 기도 중에 깨달음을 얻었다. 기도가 어렵다는 사실을. 기도를 하려면 대상이 필요하지만, 신이 존재하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는 모순 속에서 기도를 계속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러자 그녀의 내면에서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나를 무엇이라 부르며 기도를 하더라도 나의 존재가 달라지지 않는다. 부처님, 공자님, 하늘님, 알라, 하나님, 아버지…. 네가 어떻게 나를 부르더라도 나는 여전히 존재하며 변하지 않는다. 네가 평소에 어떻게 부르는 것이 익숙하니?”
그녀는 대답했다.
“하나님이요!”
그러자 다시 목소리가 말했다.
“그래, 하나님이라고 나를 부르거라. 네가 나를 뭐라고 부르든 나는 그대로란다.”
이것은 단순한 대화가 아니었다. 이것은 종교의 본질에 대한 통찰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신념과 문화에 따라 신을 부르는 방식이 다르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어떤 사람은 ‘부처님’이라고, 또 어떤 사람은 ‘알라’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이 실재하든, 단순한 개념이든, 우리의 언어와 명칭이 신의 본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종교란 무엇인가?
종교의 본질은 특정한 이름과 형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자기 존재를 초월적인 무언가와 연결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신의 이름을 정하고, 기도의 형식을 만들며, 경전을 통해 신과의 관계를 정의한다. 그러나 이런 모든 형식적 요소들은 결국 인간의 것이며, 신의 본질과는 무관할 수도 있다.
고대 인류가 종교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죽음에 대한 두려움, 자연을 이해하지 못한 무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열망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종교는 인간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했다. 조직화된 종교는 신의 존재를 강요하고, 신의 이름을 둘러싼 논쟁을 만들며, 종종 서로를 배척하는 도구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신이란, 단순히 인간이 부르는 이름에 갇혀 있는 존재가 아닐 것이다.
신앙과 이름의 의미
그렇다면 신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앙이란 단순히 어떤 신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신을 향한 마음가짐과 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신을 부르든, 그 신앙이 개인의 삶에서 진정한 의미를 가질 때만이 진실한 신앙이 될 수 있다. 신을 특정한 틀 속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신앙의 핵심이 아닐까?
신은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그 신은 어떤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우리 각자의 신념과 경험 속에서 다르게 나타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신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신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삶과 세계를 이해하고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 있다.
어쩌면 신의 존재 유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이 없는 세계에서도 우리가 도덕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일 것이다. 신을 부르는 이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신을 향한 태도와 그로 인해 변화하는 삶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녀와의 대화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종교의 본질은 단순한 믿음이 아니라, 우리가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 속에서 형성되는 것이라는 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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