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와 창조, 인류를 만든 이야기들고대 문명들의 창조 신화와 창세기의 차이와 의미

인류는 늘 물었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이 질문은 시대와 문화를 초월해 반복되어 왔다. 창조에 대한 이야기는 어느 문명에나 존재한다. 신화는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은 세계의 질서를 설명하고, 인간의 위치를 규정하며, 공동체의 윤리와 권위를 정당화하는 문화적 코드다.

창세기 1~11장은 히브리 민족이 공유하던 고대 근동 세계의 창조 이야기와 뿌리를 같이하지만, 동시에 명확한 차별점을 보여준다. 그 차이는 단순히 ‘신이 하나냐 여럿이냐’의 문제가 아니다.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 신의 성격, 역사와 윤리의 기원이 어디서 오는가에 대한 해석이 완전히 다르다.

 

수메르와 바빌로니아, 신들이 싸우다 창조하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창조 신화 **《에누마 엘리쉬》**에서는 우주의 혼돈이 태초의 상태였다. 바닷물의 여신 티아마트와 민물의 신 압수가 이 우주를 형성했고, 신들의 갈등 끝에 마르둑이 티아마트를 죽이고 그녀의 시체를 반으로 갈라 하늘과 땅을 만든다.

인간은 왜 창조되었을까?
그 이유는 신들의 노동을 대신할 노예로서였다. 인간은 신들을 위한 봉사자였고, 신들의 심기를 건드리면 파멸당하는 존재였다.

이 이야기에서 세계는 폭력과 혼돈, 경쟁의 결과로 탄생한다. 신은 예측 불가능하고, 인간은 종속된 피조물이다.

 

이집트 신화, 질서와 순환의 세계

이집트 창조신화에서는 태초에 혼돈의 바다 ‘눔’이 있었다. 거기에서 태양신 ‘라’가 태어나고, 그가 스스로를 분리해 하늘과 땅, 그리고 인간을 만든다. 이 신화는 혼돈으로부터 질서를 세우는 과정에 집중되어 있으며, 파라오는 신의 후손이자 질서(Ma’at)를 유지하는 자로 간주된다.

인간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신의 질서를 유지해야 할 존재였다. 신들은 인간을 사랑하기보다는, 체계를 위해 필요로 했다.

 

히브리 성경, 전혀 다른 서사의 출현

창세기의 서사는 근동 신화의 문법을 어느 정도 따르되, 그 안에서 급진적인 전환을 시도한다.

  1. 신은 하나다 – 복수의 신이 아니라 유일신이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한다. 전쟁도, 음모도 없다. 혼돈은 ‘질서의 결여’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질서로 바뀌는 대상이다.
  2. 인간은 신의 노예가 아니다 –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 ‘대신 일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동 창조자로 부름 받은 존재다. 다스리되 착취하지 않고, 번성하되 책임을 가지는 존재다.
  3. 윤리의 출처가 신 자신이다 – 바벨탑의 이야기를 보면 인간의 교만이 문제 되지만, 동시에 ‘질서를 넘어선 자기 이름 만들기’에 대한 경고다. 이는 단지 신의 기분이 아니라, 창조된 질서와 공동체적 조화의 붕괴에 대한 통찰이다.

 

신화와 계시,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

신화는 인간이 신을 설명하려는 시도이고,
계시는 신이 인간에게 자신을 알리는 사건이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가 고대 근동 신화들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신의 성품과 인간의 존엄에 대한 급진적 선언을 포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창세기는 단순히 ‘어떻게 세상이 만들어졌는가’보다
‘왜 만들어졌는가’,
‘인간이 어떤 존재로 이해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이다.

 

기억이 아니라 믿음으로 읽을 때

수메르의 홍수 신화, 이집트의 태양 순환, 바벨론의 신 전쟁은 모두 세계의 반복과 순환을 전제로 한 이야기다.
그러나 창세기는 선형의 역사, 즉 시작과 끝, 목적이 있는 시간을 말한다.

이 시간관은 인간에게 책임과 구속, 선택과 회복이라는 윤리적 자리를 제공한다.

홍수는 기억되어야 할 재난이 아니라,
새로운 언약의 기점으로서 신앙 안에서 읽혀야 할 사건이 된다.

 

이야기의 힘은, 우리가 누구인가를 말해준다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믿는가?
혼돈에서 벗어나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야기?
신들의 기분에 따라 살해되고 벌을 받는 노예로서의 인간?
아니면, 사랑으로 창조되고 책임으로 부름받은 존재?

어느 이야기를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가 스스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대하는 방식이 바뀐다.

그렇다면 창조의 이야기는 결국 삶의 이야기다.
그 시작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삶을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할지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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