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건물 위에만 있지 않다교회가 없어도 그리스도인은 있고, 교회가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없다

그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
성경책도 집에 없었고, 예배 시간도 몰랐다.
하지만 매주 반찬을 싸서 옆집 할머니에게 전해주었고,
퇴근길에 길가에 쓰러진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가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주저 없이 다가가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그를 ‘좋은 어른’이라 불렀다.
나는 그를 보며 조용히 생각했다.
“교회는 없지만, 그리스도는 저 안에 계시겠구나.”

 

교회는 있어도, 그리스도는 없는 경우

반대로, 매주 예배에 빠지지 않고
십일조와 봉사를 철저히 지키며
기도의 언어는 유창한 이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앙을
늘 누군가를 판단하는 잣대로 사용했다.

가난한 자는 게으르다고 말했고,
의심하는 자는 믿음이 없다고 질책했다.
그의 기도는 길었지만,
말투는 점점 단정적이 되어갔다.
그의 얼굴엔 평안보다 의로움의 무게가 드리워져 있었다.
그를 보며 나는 조용히 되묻는다.
“교회는 있지만, 그리스도는 어디에 계신가?”

 

믿음은 장소가 아니라 방식이다

초대교회에는 건물이 없었다.
지하 공동묘지에서, 가정의 식탁 위에서,
박해받는 길 위에서 이루어진 모임이 곧 교회였다.
그들에게 신앙은 공간이 아니라 관계였고,
형식이 아니라 삶의 태도였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교회를 하나의 구조물로 이해한다.
정해진 시간, 정해진 의례, 정해진 언어 속에서
신앙은 점점 표준화되고, 거주등록 되었다.

그러는 사이,
예수를 닮은 사람은 줄어들고,
예수의 이름을 말하는 사람은 늘어났다.

 

그러니 우리는 물어야 한다

당신 안에 있는 예수는
주일 아침에만 머무는 분인가?
혹은 월요일의 이메일, 화요일의 대화,
수요일의 피곤함 속에도 같이 살아 계신 분인가?

교회를 다닌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라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를 기억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를 살아내는 사람이다.

 

어쩌면 지금의 교회는
예수를 위한 건물이 아니라,
예수를 가려주는 건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진짜 교회는,
그 건물 바깥에 있는지 모른다.

십자가는 건물 위에도 달려 있지만,
어떤 이의 침묵과 따뜻함 속에도 존재할 수 있다.

교회가 있어도 그리스도인은 없을 수 있다.
그리고 교회가 없어도,
그리스도인은 여전히 존재한다.
예수는 구조 안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삶의 자리에 머무시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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