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담쓰談] 노안, 난청, 그리고 마음의 노화나이 든다는 것, 사려가 흐려진다는 것

나이가 들면 가장 먼저 오는 변화는 눈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책이 멀게 느껴지고,
휴대폰 글자가 흐릿해진다.
40대 중반쯤, 우리는 그것을 ‘노안(老眼)’이라 부른다.

멀리는 잘 보인다.
하지만 가까운 건 흐리다.
이건 육체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삶에 대한 태도에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가까이 있는 사람의 감정을 보지 못하고,
가까이에서 건네는 말을 듣지 못하고,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무뎌지는 것.
그게 어쩌면 마음의 노안이다.

눈 다음으로 오는 건 귀다.
TV 볼륨이 점점 커지고,
“아빠, 좀 줄이세요”라는 말이 딸의 습관처럼 변한다.
어머니는 소금 간을 세게 하시고는
“내 입에는 안 짜다”며 웃으신다.
맛을 모르겠다고 하신다.

미각이 무뎌지고, 청각이 흐려지고,
그러다 어느 날
사람의 말도, 기분도, 사정도
들리지 않고 느껴지지 않게 된다.

그때부터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잘 듣지 않고,
말을 자르고,
자기 생각만 강조하고,
공감 대신 판단을 앞세우는
그런 어른이 되기도 한다.

몸은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면서도
마음은 왜 그렇게 쉽게 굳어지는지.
노안이 오면 돋보기를 끼지만,
마음의 노안에는 왜 렌즈를 찾지 않을까.

청력이 떨어지면 보청기를 찾으면서,
왜 타인의 말을 놓치고도
그저 “내가 맞다”며 밀어붙일까.

진짜 성숙이란,
잘 보이는 눈보다
잘 바라보려는 시선,
잘 들리는 귀보다
잘 들으려는 자세에서 시작되는 건지도 모른다.

나이 든다는 건
몸이 불편해지는 일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이
흐릿해질 수 있다는 자각을 갖는 일
이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나이 들어
더 사려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
말보다는 듣는 데 익숙하고,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에
더 오래 머무를 줄 아는 사람.

노안보다 두려운 건,
마음이 굳어지는 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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