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참견이 많아진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좋게 보면 관심이고,
나쁘게 보면 간섭이다.
하지만 그 차이는 아주 얇은 종잇장처럼
상대의 감정에 따라 달라진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내 의도’만으로 설명한다는 데 있다.
“나는 좋은 뜻이었어.”
“널 생각해서 한 말이야.”
그 말 속에는
상대의 해석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적인 진심이 숨어 있다.
누군가에게는 도움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상처일 수 있는 말.
그것이 바로 충고이고,
우리가 나이 들수록 경계해야 하는 말의 함정이다.
어릴 땐 말하기보다 듣는 일이 많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듣기보다 말하는 일이 많아진다.
경험이 쌓였고,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경험이
‘나도 저랬어’로 이어지면
말은 과거의 나를 들려주는 무대가 되고,
상대는 그저 연기 없는 청중이 된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건,
말을 한다는 건 권리가 아니라 기술이라는 사실이다.
그 기술은
타이밍을 보고,
상대의 상태를 살피며,
때로는 침묵을 선택하는 데서 비롯된다.
말은 입으로 나오지만,
신뢰는 귀로 생긴다.
충고는 말로 시작하지만,
공감은 듣는 데서 시작된다.
세상에는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듣고 싶지 않은 때도 있다.
그 순간에 던져진 ‘진심’은
오히려 무게가 되어
상대를 짓누를 수 있다.
말을 아낀다고 현명한 것은 아니지만,
말을 줄인다고 소중한 것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나이 들수록
덜 말하고,
더 듣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말의 효능보다
침묵의 배려가 더 오래 기억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