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에서 깨어 스마트폰을 드는 순간부터 우리는 알고리즘이라는 보이지 않는 안내자의 손에 이끌려 하루를 시작한다. 유튜브는 어젯밤 내가 본 영상과 비슷한, 그러나 조금 더 자극적인 콘텐츠를 ‘나를 위해’ 준비해두었고, 넷플릭스는 나의 시청 기록을 분석해 ‘당신이 좋아할 만한’ 시리즈를 홈 화면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배치한다. 인스타그램은 내가 잠시 멈췄던 상품 광고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비슷한 브랜드의 피드를 쉴 새 없이 밀어 넣는다. 이 모든 것은 놀랍도록 편리하고 정확해서, 마치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비밀스러운 친구가 생긴 것만 같다. 우리는 이 정교한 추천 시스템이 만들어준 ‘나만의 세계’ 안에서 안락함을 느낀다.
하지만 이 안락한 세계가 사실은 견고한 감옥이라면 어떨까? 우리가 ‘나의 취향’이라고 믿는 것이, 사실은 거대 테크 기업의 서버에서 계산되고 설계된 결과물이라면? 알고리즘은 본래 우리의 선택을 ‘예측’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어느새 우리의 선택을 ‘지시’하고 ‘조형(shaping)’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좋아하는 것들만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무엇을 더 좋아하게 될지를 결정한다. 우리가 던진 공을 정확히 되받아주는 벽인 줄 알았는데, 실은 우리가 던질 다음 공의 궤적까지 미리 정해놓는 거대한 중력장이었던 셈이다.
이 현상을 미국의 인터넷 활동가 일라이 패리저(Eli Pariser)는 ‘필터 버블(Filter Bubble)’이라는 용어로 명쾌하게 정의했다. 알고리즘이 만든 개인화된 정보의 거품에 갇혀, 자신과 다른 견해나 새로운 정보를 만나지 못하게 되는 고립 상태를 의미한다. 이 거품 안에서 우리는 세상이 온통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나와 다른 의견은 ‘비상식’이 되고, 반대편 진영의 주장은 ‘음모’가 된다. 사회는 점차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섬들로 분열되고, 합리적 토론이 있어야 할 광장은 확증편향에 빠진 이들의 고성만이 오가는 검투장으로 변질된다. 나의 신념을 강화해주는 정보의 메아리만 끝없이 울려 퍼지는 ‘에코 챔버(Echo chamber)’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극단적이고 편협해진다.
문제는 이것이 정치적 견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의 문화적 취향, 미적 감각, 심지어는 일상의 소소한 선택까지도 알고리즘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율된다. 내가 지금 듣는 음악, 보는 영화, 입는 옷은 과연 수많은 가능성 속에서 내가 주체적으로 발견하고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알고리즘이 제시한 몇 가지 선택지 안에서 ‘선택했다고 착각’한 것일까? 우연한 발견의 기쁨, 낯선 세계와의 조우가 주는 설렘은 점점 사라지고, 우리의 세계는 예측 가능한 것들로만 채워진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 교수가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서 경고했듯, 우리의 경험은 이제 그들의 상품이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정교한 디지털 감옥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무너져야만 하는가? 해법은 알고리즘을 악마화하고 기술을 거부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작동 원리를 명확히 이해하고, 의식적으로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내가 소비하는 정보가 어떻게 나에게 도달했는지 질문을 던지는 것, 때로는 일부러 나의 ‘취향’과 전혀 다른 콘텐츠를 찾아보는 것, 추천 목록이 아닌 검색창에 직접 키워드를 입력해 정보를 탐색하는 것. 이 작고 의식적인 ‘알고리즘 깨기’의 실천이 우리의 정신적 주권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알고리즘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지만, 그 거울은 우리가 보고 싶어 하는 모습만을 비춘다. 때로는 그 거울에서 눈을 돌려, 거울이 비추지 않는 창밖의 풍경을 직접 내다보는 용기가 필요하다. 당신의 취향은 누구의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여정은, 알고리즘에 감금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포기해서는 안 될 마지막 자유의 영토다.
알고리즘은 개인화된 추천으로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필터 버블’과 ‘에코 챔버’에 가두어 세상을 편협하게 보도록 만든다. 이는 정치적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만 아니라, 문화적 취향마저 획일화하여 우연한 발견의 기쁨을 앗아간다. 우리의 경험과 선택이 데이터 자본주의의 상품으로 전락한 시대, 알고리즘의 영향력을 의식적으로 벗어나려는 노력을 통해 정신적 주권을 지켜야 한다. 나의 ‘취향’이 과연 나의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유의 시작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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