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붕괴는 서서히 진행된다
마치 민주주의의 위기를 다룬 한 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현실이다.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의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는 현대 민주주의가 얼마나 취약한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군사 쿠데타나 혁명이 아닌,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민주주의가 서서히 붕괴하는 과정을 설명한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들이 사법부를 장악하고, 언론을 탄압하며, 선거 제도를 변경하는 방식으로 민주주의의 핵심 요소를 하나씩 제거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점진적으로 진행되며, 시민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토대가 사라지게 된다.
독재로 향하는 네 가지 경고 신호
저자들은 잠재적인 독재자를 식별하기 위한 네 가지 경고 신호를 제시한다. 이 신호들 중 하나라도 나타난다면,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는 경고로 받아들여야 한다.
- 민주주의 규범의 거부: 헌법을 부정하거나,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존중하지 않는 태도.
- 정치적 경쟁자의 부정: 상대를 반국가 세력으로 낙인찍거나,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
- 폭력의 용인 또는 조장: 정치적 폭력을 묵인하거나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태도.
- 시민 자유의 억압: 언론의 자유를 포함한 기본권을 제한하거나 탄압하는 행위.
이러한 신호들이 나타나는 순간, 민주주의는 이미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 있다.
합법적인 절차로 무너지는 민주주의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의 붕괴가 극적인 쿠데타나 독재자의 등장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역사적으로 가장 위험한 독재는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등장한 경우였다.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기존 정치 세력과의 동맹을 통해 권력을 잡았으며, 그 과정에서 헌법과 제도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해체했다. 이러한 사례들은 민주주의의 붕괴가 외부의 강압이 아닌 내부의 정치적 조작과 타협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정부를 통해 이러한 흐름이 감지되었다.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정당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정당이 극단주의자나 포퓰리스트의 부상을 막는 ‘문지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의 경우, 프라이머리 제도의 확대로 인해 정당이 후보를 직접 선출하는 방식이 약화되었고, 그 결과 정치적 아웃사이더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사례는 특정 국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민주주의의 후퇴가 감지되는 가운데, 선출된 독재자들의 등장이 민주주의의 최대 위협이 되고 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필수 요소
이 책은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두 가지 필수 요소를 강조한다.
- 상호 관용(Mutual Tolerance): 서로를 정당한 정치적 경쟁자로 인정하고, 극단적인 탄압과 배제를 피해야 한다.
- 제도적 자제(Forbearance): 법적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신중하게 행사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요소가 약화될 때, 민주주의는 더욱 빠르게 붕괴한다. 현재의 정치 환경을 보면, 이러한 요소들이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시민의 역할: 민주주의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저자들은 민주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시민 사회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한다. 민주주의는 절대 저절로 유지되지 않는다. 끊임없는 노력과 감시, 그리고 참여가 필요하다.
- 시민들은 권력의 남용을 감시하고, 민주주의 규범을 강화하는 데 적극 참여해야 한다.
- 정치적 무관심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이며, 국민들이 침묵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점점 더 후퇴할 수밖에 없다.
- 언론의 자유를 보호하고, 정부의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것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이 책은 민주주의의 취약성과 붕괴 과정을 다양한 역사적 사례를 통해 분석하며, 현대 사회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방안을 제시한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묘사된 현실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민주주의는 외부의 적에 의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부의 타협과 방조, 그리고 시민들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무너진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는 이미 “위험 신호”를 보이고 있지는 않은가? 민주주의는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실을 직시하고 행동하는 용기다. 역사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우리가 침묵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