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크레딧이라는 조용한 갈채무대의 끝,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

영화가 끝났다.
관객이 숨을 고른다.
그리고 스크린에는 검은 배경 위로
작은 글자들이 흐르기 시작한다.
주연배우의 이름, 감독, 작가, 촬영감독, 조명팀, 미술팀, 보조출연자, 로케이션 매니저, 케이터링 스태프까지…
그 이름 하나하나가 파도처럼 지나간다.
누군가는 벌써 자리에서 일어났고,
누군가는 눈시울을 붉힌 채 마지막 이름까지 눈에 담는다.

엔딩크레딧.
그것은 단지 영화의 꼬리가 아니다.
그것은, 빛을 만든 어둠들의 이름이다.

대부분은 기억하지 못한다.
누가 조명을 비췄는지,
누가 배우의 뺨에 흐르는 땀을 닦았는지,
누가 그 장면 뒤에 숨어 시간을 조율했는지.
그러나 그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그 어떤 장면도, 그 어떤 대사도
그토록 눈부시게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빛나는 배우는 무대 위에서 춤춘다.
그러나 그 무대의 목재를 짜고,
커튼을 달고, 음향을 조율하고,
마이크를 교정한 이들은
무대 뒤, 혹은 무대 밑에 있었다.
무대는 홀로 설 수 없고,
스포트라이트는 혼자 켜지지 않는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지금 주연처럼 살아가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 사람이 설 수 있었던 자리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 위에 있다.
부모, 친구, 동료, 이름도 모르는 기사님,
그리고 매일 아침을 시작하게 해주는 커피 한 잔의 따뜻함까지.

내가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단지 내 노력 때문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내가 쓰러지지 않게 받쳐주었던
수많은 “스태프”들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의 삶의 엔딩크레딧이 되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기억되지 않아도, 박수를 받지 않아도,
그 사람의 무대가 완성될 수 있도록 조용히 뒤를 채워주는 존재.
그리고 우리 스스로의 삶의 크레딧에는
고맙다는 말을 너무 늦지 않게,
너무 짧지 않게 남겨야 한다.

영화가 끝난 후, 크레딧이 모두 흐른 뒤에도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관객들이 있다.
그들은 안다.
이야기의 진짜 끝은,
이름이 모두 지나가고 난 다음에야 완성된다는 것을.

당신은 지금 누구의 엔딩크레딧에 올라갈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리고 당신의 삶의 마지막 장면에
어떤 이름을, 어떤 감사를 남기고 싶은가?

영화가 끝나도, 그 이름은 오래 남는다.
빛은 사라져도, 그것을 비추기 위해 애쓴 어둠은
그 자체로 존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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