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불구하고부끄러움을 모르는 정치, 어디로 가는가

옛 선비들은 염치가 없으면 짐승과 다를 바 없다고 했다.

염(廉)은 청렴이고, 치(恥)는 부끄러움이다.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마음,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태도, 그것이 곧 사람다움의 최소한이었다.

하지만 오늘 한국 정치에서 염치는 가장 먼저 버려진 가치다.

잘못이 드러나도 사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고, 책임을 전가하고, 억지를 정당화한다.

사과는 국민 앞에서 진심으로 고개 숙이는 행위가 아니라, 정치적 타이밍을 계산한 하나의 기술이 되었다.

부끄러움은 책임이 아니라 약점으로 치부된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기묘한 장면을 목격한다.

정치인이 부끄러워해야 할 순간에, 정작 얼굴이 화끈거리는 건 국민이다.

잘못을 저지른 당사자가 아닌,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이 더 창피해지는 현실.

뉴스 화면 속 정치인의 표정보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 국민의 마음이 더 무겁고 더 수치스럽다.

염치를 잃은 정치에는 책임이 없다.

책임이 없는 정치는 권력 투쟁으로만 귀결된다.

민생은 뒷전이고, 권력은 전리품처럼 나눠 가진다.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정치, 뻔뻔함으로 무장한 권력은 결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무너뜨린다.

역사는 증언한다.

염치를 지킨 사람은 권력을 잃어도 존경과 사랑을 얻는다.

염치를 버린 사람은 권력을 얻어도 평판과 사람됨을 잃는다.

이 대조는 단순한 정치적 교훈이 아니다.

사람이란 무엇으로 평가받는가에 대한 오래된 질문이다.

권력은 잠시 손에 쥘 수 있지만,

사람됨은 일생을 걸쳐 쌓이는 것이다.

눈앞의 승리와 순간의 이익이 결국은 잊히더라도,

부끄러움을 알았던 태도는 세대를 넘어 기억된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레테(ἀρετή, 덕성)’가 인간의 가치를 결정한다고 믿었고,

중국의 성리학은 ‘수오지심(羞惡之心,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인간다움의 출발점이라 했다.

서양과 동양을 막론하고,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힘이 아니라 부끄러움을 아는 능력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사회는 어떠한가.

부끄러움 없는 권력자가 승리하는 세상이라면,

그 사회는 힘의 크기로만 사람을 나누는 ‘야생의 질서’에 불과하다.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문명의 위기다.

결국 염치란 개인의 도덕심을 넘어,

공동체가 스스로 인간다운 길을 걷고 있는지를 가늠하는 거울이다.

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할 줄 아는 사회,

그 사회만이 존경과 사랑을 후세에 남길 수 있다.

권력은 시간이 가져가지만,

사람됨은 역사가 남긴다.

Leave a Reply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