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과서에 수록되어 가난했던 청춘의 마음을 따뜻하게 했던 수필이 있다.
김소운의 『가난한 날의 행복』이다.
쌀은 구했지만 반찬은 없던 어느 신혼의 하루.
남편은 쪽지 한 장을 밥상 위에 남긴다.
“왕후의 밥, 걸인의 찬 ─ 이걸로 시장기만 속여 두시오.”
그 따뜻한 말 한 줄에, 아내는 ‘왕후가 된 것보다 더 행복하다’고 느낀다.
먹을 것이 아닌 마음이 배를 채우고, 정성이란 반찬 하나가 허기를 위로한다.
이 소박한 장면은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일러주었다.
하지만 보기에는 거창한데, 막상 열어보면 비어 있는 것들이 있다.
반짝이는 브랜드, 그럴듯한 언변, 세련된 옷차림, 눈부신 인테리어까지.
겉으로는 ‘왕후의 밥’처럼 보이지만, 정작 속을 들여다보면 ‘걸인의 찬’보다 못한 경우다.
그곳엔 사람의 온기도, 일의 진심도, 관계의 땀이 없다.
이 시대는 이미지로 거래되는 세상이다.
카메라 앞에선 누구나 전문가가 되고,
상품 하나에 몇 겹의 패키지를 둘러 믿음을 포장한다.
그럴싸한 피피티, 언론에 나간 기사 한 줄,
잠깐의 스포트라이트가 ‘진짜’처럼 여겨진다.
그것이 시장이고, 마케팅이고, 자기표현의 전략이라지만—
우리는 점점 ‘내용 없는 외양’에 길들어가고 있다.
왕후의 밥처럼 차려진 SNS,
그 속엔 걸인의 찬처럼 메마른 마음,
소비만 있고 정성은 없고, 관계는 많지만 신뢰는 없다.
어쩌면 지금은 반대가 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걸인의 밥처럼 소박해도, 왕후의 찬처럼 진실된 무엇.
사람도, 브랜드도, 말도, 관계도 모두 비슷하다.
포장은 점점 더 화려해지지만, 속은 점점 더 비워져간다.
한 끼 밥처럼 차려진 웹사이트, SNS, 광고문구, 포트폴리오 속의 ‘겉’.
그 어디에도 김소운의 쪽지 같은 진심은 없다.
잘 차린 밥상이지만, 막상 먹을 것은 없는 느낌.
‘이게 다인가?’ 싶은 허무함.
누군가는 허름한 티셔츠에 진짜 고수를 숨기고,
누군가는 값싼 간판 아래서 사람을 품는다.
좋은 사람은 장식이 없고,
진짜 브랜드는 광고보다 실력이 앞선다.
가짜는 반드시 과잉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진짜는 반드시 절제로 자신을 증명한다.
진짜는 그리 화려하지 않다.
반찬이 없어도 따뜻한 밥 한 그릇이면 충분했던 날처럼,
진심이 있다면 말은 적어도 된다.
브랜드도 마찬가지다.
말이 많고 장식이 많을수록 의심이 커진다.
외형보다 본질, 꾸밈보다 실력, 이미지보다 사람.
하루 세 끼 먹는 밥보다
평생을 함께하는 마음이 더 깊다.
왕후의 밥처럼 보이고 싶은 유혹이 아니라,
걸인의 찬처럼 진심을 담고 싶은 태도.
모양보다 내용, 속도보다 깊이, 광채보다 체온.
그런 것들이 결국 오래 남고, 오래 기억된다.
그럴듯한 말보다, 따뜻한 밥 한 그릇이 사람을 살린다.
겉이 전부인 시대에도, 속이 전부인 사람이 있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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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ail: brian@hyuncheong.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