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말은 역사를 비추는 거울이다. 그런데 그 거울이 비뚤면, 기억도 왜곡된다. 한국 근현대사의 핵심 장면들을 표현할 때 우리는 오랫동안 식민지 권력과 제국주의 담론이 남긴 언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다. 그것은 무심한 습관일 수 있지만, 그 습관이 세대를 거듭하며 ‘진실’처럼 굳어버린다. 그래서 용어를 바로잡는 일은 단순한 말씨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 인식의 정정 작업이다.
1. 안중근은 ‘의사’가 아니라 ‘장군’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안중근을 ‘안중근 의사’라 불러왔다. 그러나 ‘의사(義士)’라는 표현은 본래 민간인이 개인적 신념으로 행동했을 때 붙이는 호칭이다. 일본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어, 하얼빈에서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을 ‘테러’라고 규정했다. ‘민간인이 민간인을 죽인 사건’이라는 식민지적 프레임이다. 그러나 안중근의 행위는 민간인의 즉흥적 행동이 아니라, 군사적 맥락 속에서 이뤄진 작전이었다. 독립군의 장교로서, 적국의 실세를 제거하는 명확한 군사행동이었다. 그렇다면 올바른 호칭은 ‘의사’가 아니라 ‘장군’이다. 우리가 붙이는 이름 하나가 곧 정체성을 규정한다.
2. 만주·연해주의 투쟁은 ‘독립운동’이 아니라 ‘독립전쟁’이다
만주와 연해주에서 벌어진 항일 활동을 우리는 습관처럼 ‘독립운동’이라 부른다. 그러나 거기서 벌어진 건 단순한 ‘운동’이 아니었다. 의병 전투, 무장 봉기, 군사 훈련과 작전 수행은 명백히 전쟁의 형태를 띠었다. ‘운동’은 언제나 부드럽고 비폭력적인 어감을 남긴다. 그러나 만주벌판에서 수천 명의 독립군이 목숨 걸고 싸운 건 전쟁이었다. 그것을 ‘운동’이라 낮춰 부르는 순간, 투쟁의 피와 군사적 무게는 흐릿해진다. 우리가 ‘3·1운동’을 ‘3·1항쟁’이라 부르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말은 전투의 강도를 누그러뜨리거나, 반대로 다시 살아나게 한다.
3. ‘일제강점기’라는 말의 함정
역사 교과서에서 흔히 쓰는 말, ‘일제강점기’. 하지만 이 표현은 일본의 입장에서 본 어휘다. ‘강점’은 ‘점령하여 다스린다’는 뜻인데, 이는 마치 합법적·행정적 지배처럼 들린다. 그러나 조선에서 벌어진 건 점령 이상의 일이었다. 그것은 무단통치와 수탈, 문화 말살과 학살이 교차한 시대였다. 따라서 ‘일제식민지시대’나 ‘항일무장투쟁시대’, 더 나아가 ‘항일독립전쟁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단어 하나가 역사적 서사의 프레임을 바꾼다. ‘강점’이라 하면 일본의 행정적 시선이 살아남고, ‘항쟁’이라 하면 조선인의 저항 정신이 살아난다.
4. ‘3·1운동’이 아니라 ‘3·1항쟁’
1919년의 3월, 조선인은 비폭력 시위를 넘어 전국적 저항을 펼쳤다. 일본은 이를 ‘소요(騷擾)’라 불렀고, 해방 이후에도 ‘운동’이라는 표현이 굳어졌다. 그러나 이는 거대한 민족 항쟁이었다. 최소 수만 명이 희생되고, 전국이 들끓은 사건을 단순히 ‘운동’이라 축소하는 건 부당하다. ‘3·1항쟁’이 맞다.
5. ‘의병(義兵)’이 아니라 ‘독립군’
을미·을사의병을 비롯한 초기 무장투쟁은 단순한 민병이 아니었다. 국가가 무너진 상황에서 조직적이고 군사적인 형태로 저항한 정규군의 성격을 갖고 있었다. ‘의병’이라는 호칭은 비공식적, 임시적 집단으로 축소한다. 그들을 ‘독립군’으로 불러야 한다.
6. ‘친일파’가 아니라 ‘부역자’
‘친일파’라는 단어는 지나치게 가볍다. 마치 어떤 정치적 ‘성향’처럼 보이게 만든다. 그러나 실제로 그들은 식민지 권력에 협력하고, 동포를 고발하며, 수탈과 억압의 도구로 기능했다. 단순히 ‘친하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구조적 범죄에 가담한 ‘부역자’라 불러야 한다.
7. ‘창씨개명’이 아니라 ‘이름 강탈’
‘창씨개명’은 일본식 행정 용어다. ‘성씨를 바꾼다’는 의미지만, 실제로는 개인과 가문의 정체성을 강제로 빼앗은 폭력이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강제였다. 따라서 ‘창씨개명’이 아니라 ‘이름 강탈’, ‘정체성 말살 정책*이라 불러야 한다.
8. ‘내선일체(內鮮一體)’가 아니라 ‘동화 강요’
당시 일본이 내세운 슬로건 ‘내선일체’는 조선과 일본이 하나라는 허위 구호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조선인의 문화와 언어를 지우고 일본식으로 동화시키려는 폭력적 정책이었다. 올바른 표현은 ‘동화 강요 정책’이다.
9. ‘해방’이 아니라 ‘광복’
1945년을 흔히 ‘해방’이라 부른다. 하지만 ‘해방’은 외부의 힘으로 풀려났다는 뉘앙스를 강하게 남긴다. 실상은 조선인의 끊임없는 저항과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 그래서 우리는 ‘빛을 되찾았다’는 의미의 광복(光復)이라 불러야 한다.
왜 용어를 바꿔야 하는가
언어는 단순한 표식이 아니다. 말은 역사적 관점을 고정한다. ‘의사’라는 말이 개인의 결단을 강조한다면, ‘장군’이라는 말은 집단적 군사 투쟁의 일부로 위치를 바꾼다. ‘운동’은 사회적 움직임으로 들리지만, ‘전쟁’은 죽고 죽이는 투쟁으로 다가온다. ‘강점기’는 점령자의 시선을 반영하고, ‘항쟁기’는 피지배자의 저항을 드러낸다.
우리가 용어를 바꾸자는 건 역사의 사실을 다시 쓰려는 게 아니다. 이미 일어난 일을, 올바른 이름으로 다시 불러주자는 것이다. 잘못된 말은 왜곡된 기억을 남긴다. 올바른 말은 억눌린 의미를 되살린다.
말을 바로잡는 건 단순한 언어학의 작업이 아니라, 역사의 정의를 회복하는 일이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일본이 남긴 언어 틀에서 벗어나 우리의 관점으로 사건을 불러내는 일이다. 안중근은 장군이고, 만주의 투쟁은 전쟁이며, 그 시대는 ‘강점기’가 아니라 ‘항일독립전쟁기’다. 이름을 되찾는 순간, 역사는 다시 살아난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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