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곧 국가다(L’état, c’est moi).” 이 한마디는 프랑스의 절대왕권을 상징하는 루이 14세의 철학을 압축적으로 드러낸다. 비록 루이 14세 본인이 이 말을 직접 했다는 역사적 증거는 불확실하지만, 그의 통치는 이를 행동으로 증명했다. 그는 54년 동안 절대적인 왕권으로 프랑스를 통치하며, 스스로를 ‘태양왕(Roi Soleil)’이라 칭하고, 태양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러한 통치는 인간을 초월한 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종교와 신성을 결합한 왕권신수설에 의해 뒷받침되었다. 대사교 보쉬에가 말한 “피와 살을 가진 신”은 루이 14세의 통치철학에 완벽히 부합했다. 그의 좌우명, “만인을 능가하는 최고(Plus oultre)”는 자신의 권력을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끌어올리며, 그 어떤 제재나 견제도 불허했다.
그렇다면, 오늘날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절대왕권의 망령이 되살아나는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자로 재판에 넘겨진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2025년 1월 16일 사건 관련인 중 처음 법정에 섰다. 김용현 전 장관 측은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이며, 사법부가 이를 심판할 권한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중앙일보는 이를 보도하며 김용현 측 내란 첫 재판서 “일개 검사가 옳다 그르다 안돼”라는 제목을 달았다. 법위에 군림하고,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부정하는 태도다. 누가 그런 권력을 내란세력에게 부여했는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헌법상의 전속 권한이며, 사법부는 이에 대해 판단할 권한이 없다”는 그의 변호인의 주장은 루이 14세의 “짐이 곧 국가다”와 닮은 꼴이다. 윤석렬 대통령과 그 동조 세력, 그리고 이를 옹호하는 ‘국민의힘’이 보여주는 권력 행태는 마치 자신들이 법 위에 군림하는 절대권력자임을 자임하는 듯하다.
윤석열 대통령은 2024년 12월 3일, 대한민국 전역에 비상계엄을 선포하며 발표한 담화문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국민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정당한 계엄선포”라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러나 그의 말과 행동은 정당성을 논하기엔 너무도 비논리적이고 오히려 민주주의의 근간을 파괴하는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의 담화에서 “계엄은 헌법과 법률에 따른 정당한 조치”라고 강조했지만, 뒤따르는 계엄사령부의 포고령은 그 정당성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특히, 헌법기관인 국회를 총칼로 제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말살하며, 포고령 위반자를 “처단”하겠다는 무시무시한 언어를 거리낌 없이 사용한 점은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적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포고령은 절대권력 망령의 상징적 실체
계엄사령부의 포고령만 보더라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내용을 담고 있다. 국회와 지방의회, 정당의 활동과 정치적 결사를 전면 금지하며, 집회와 시위 등 모든 정치활동을 불법으로 규정했다. 언론과 출판마저 계엄사의 통제 아래 놓이며, “가짜뉴스”나 “허위선동”을 금지하는 명목으로 모든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계엄법 제9조에 따라 영장 없이 체포, 구금, 압수수색을 할 수 있다”는 내용과, “계엄법 제14조에 의해 처단한다”는 표현이다. 이같이 “처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권력이 법 위에 군림하며, 국민의 생사여탈권까지 행사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이는 루이 14세가 “짐이 곧 국가다”라며 신권적 권력을 무한대로 확대했던 행태를 떠올리게 한다. 루이는 태양을 자신의 상징으로 삼고, 왕권에 대한 도전을 신성모독으로 간주하며 모든 정치적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했다. 마찬가지로, 윤석열 대통령 역시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라는 명목으로 정치적 반대 세력을 “반국가세력”으로 몰아 탄압하고, “체제전복세력”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민주주의를 말살하는 계엄 포고령을 정당화했다.
총칼로 국회를 제압하고 국민을 처단하다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포고령은 헌법기관인 국회를 사실상 무력화시키고, “정당 활동과 정치적 결사를 금지한다”는 조항을 통해 의회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행위였다. 이는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자신만의 절대 권력으로 왜곡하여, 민주주의의 핵심인 대의제와 다원주의를 짓밟는 폭거에 불과하다. 국회를 겨냥한 이 같은 행태는 루이 14세가 귀족과 의회를 철저히 무시하고 자신의 권력만을 강화했던 독단적 통치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또한, 의료진에게 “48시간 내 복귀하지 않을 경우 처단한다”는 협박성 표현은 그야말로 공포정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러한 포고령은 국민의 기본권을 짓밟으며, 오로지 권력 유지를 위해 공포와 탄압을 도구로 사용하는 독재적 통치의 전형이다. 루이 14세가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하며 절대왕권을 강화했던 것처럼,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역시 법과 질서를 빌미로 권력을 무제한적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로밖에 볼 수 없다.
민주주의의 사형선고
윤석열 대통령과 계엄사령부는 포고령에서 “반국가세력”과 “체제전복세력”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며, 이를 이유로 국민의 모든 기본권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사형선고와 다를 바 없다. 루이 14세의 절대왕권은 결국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그의 후계자들은 권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몰락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민주주의를 무시한 채 자신을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로 포장하려 한다면, 그의 통치도 루이 14세의 절대왕권과 같은 종말을 맞이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반복적으로 “정당한 계엄선포”를 주장하며 민주주의와 법치를 수호한다고 외쳤지만, 그의 행동과 포고령의 내용은 그 모든 주장을 뒤집는다. 루이 14세는 “짐이 곧 국가”라며 권력을 신성시했지만, 결국 그의 통치는 권력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혁명의 불길 속에 무너졌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역시 이러한 절대 권력의 위협 앞에서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처단”과 “통제”를 내세운 권력의 남용은 민주주의의 역사를 거슬러 오를 수 없음을 윤석열 대통령은 반드시 깨달아야 한다.
법 위에 군림하려는 현대의 태양왕
루이 14세의 시대에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왕권이 모든 권력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법치주의와 권력 분립의 원칙 위에 세워진 민주공화국이다. 대통령 역시 헌법과 법률 아래에서 그 권한을 행사해야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법을 초월할 수 없다. 윤석렬 대통령과 그를 옹호하는 세력이 보여주는 행태는 루이 14세가 “태양은 만물을 비추되, 그 어떤 것으로도 가려지지 않는다”고 선언했던 것과 유사한 태도를 보인다. 법의 심판조차 “일개 검사”의 판단으로 치부하며, 대통령의 통치 행위는 성역으로 남아야 한다는 논리는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권력의 절대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짐이 곧 국가다”라는 사고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며,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력을 사유화하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희극으로
역사적 사례는 이러한 권력 남용이 결코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루이 14세의 후계자인 루이 16세는 프랑스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결국 단두대에서 생을 마감했다. 권력의 절대화는 언젠가 그 대가를 치르기 마련이다. 오늘날 한국에서 권력을 남용하며 법 위에 군림하려는 시도 역시 예외가 될 수 없다. 헌법은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장치이며, 대통령조차도 이에 구속된다. 이는 단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존립에 관한 문제다.
절대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짐이 곧 국가다”라는 루이 14세의 논리는 결국 권력을 견제할 장치가 부재한 사회에서 권력의 부패와 남용이 어떻게 극단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대통령과 그의 동조 세력이 “법의 심판을 받지 않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스스로를 규정한다면, 이는 민주주의의 근본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프랑스 혁명은 절대왕권에 맞서 “법 앞에 평등”을 주장하며 시작되었다. 대한민국 역시 한국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광주 민주화 운동, 군부독재의 마지막 발악을 무너뜨렸고,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며 민주주의의 커다란 도약을 이루어낸 6월 민주항쟁, 전국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이게 나라냐”고 외치며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증명한 촛불혁명, 그리고 최근 한국 민주주의의 굳건함을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보여준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 중단과 탄핵 찬성 집회에 이르기까지, 시민과 민중의 투쟁이 민주주의를 지켜낸 산 증거로 남아 있다. 윤석렬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이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이 주장하는 “법 위에 군림하는 권력”은 결국 시민의 저항과 민주주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러나 루이 14세가 구축한 절대왕권의 역사가 비극이었다면, 이를 대한민국의 권력자들이 반복한다면 이는 분명 희극으로 전락할 것이다. 절대왕권의 시대는 끝났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는 다시 한 번 이를 증명해야 한다.
김현청 brian@hyuncheong.kim
콘텐츠 기획자, 브랜드 마스터, 오지여행가, 국제구호개발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