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의 『오셀로』에서 이아고는 “선량한 명성은 보석이요, 도둑맞은 자는 가난해졌으되 도둑은 부자가 되지 않는다”고 속삭인다. ‘평판(名聲)’이라는 무형 자산이 가진 불가역성—한 번 훼손되면 회복이 어렵고, 빼앗은 자도 온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모순—을 찌르는 대사다.
‘평판’은 단순한 사회적 평가나 타인의 인식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것은 개인이 속한 관계망 속에서 신뢰와 영향력을 구축하는 ‘사회적 자본’이다. 셰익스피어 시대는 물론 오늘날에도 평판이 갖는 힘은 실체화된 자산처럼 타인과의 상호 작용에서 거래되고, 인생 경로를 결정짓는다. 좋은 평판은 협력과 기회의 문을 열고, 부정적 평판은 사회적 배제를 초래하는 ‘보이지 않는 규제 기제’다.
이아고의 대사는 ‘명성은 보석’이라고 했듯, 평판은 깨지기 쉬우면서도 소중한 자산임을 환기한다. 사회적 신뢰는 신용과 같다. 한번 부서지면 금세 회복되지 않고, 경제에서 ‘신용 불량자’가 더 이상 정상적인 거래를 하기 어렵듯, 개인도 평판이 손상되면 다시 이전의 위치로 돌아오기 어렵다. 이 회복 불가능성은 평판의 불가역성을 정의하는 핵심적 특징이다.
“도둑맞은 자는 가난해졌으되 도둑은 부자가 되지 않는다.” 이 문장에서 ‘도둑맞은 자’는 평판을 잃음으로써 가난해진 자다. 평판이 흔들릴 때의 ‘가난’은 단순히 물리적 빈곤이 아니라, 존재론적이며 관계론적인 ‘공허’와 ‘소외’를 의미한다. 개인은 사회적 존재이기에 평판을 잃으면 공동체 내에서 역할과 정체성을 약화시키고, 이로 인해 심리적, 경제적 타격을 입는다.
반면 ‘도둑’은 그 평판을 빼앗았지만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평판을 빼앗아 상대를 곤란하게 만들 수는 있으나, 그 빼앗긴 평판을 온전히 자신과 동일시하거나 완벽히 소유할 수는 없다. 이는 평판이 ‘타인의 인정’과 ‘사회적 합의’라는 공동의 산물임을 말해준다. 즉, 아무리 의도적으로 명성을 훼손하려 해도 그 행위 자체가 불안정하고, 피해를 입힌 자도 완전한 성공의 경지에 오를 수 없다는 인간관계의 윤리적 메시지이다.
이 고전적 통찰은 오늘날 디지털 소통과 인터넷이라는 초연결 사회에서 더욱 강도를 더한다. 온라인 공간에 한번 올라간 ‘평판’—예컨대 SNS의 댓글, 평판 글, 영상—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 확산되며, 잘못된 평판은 극복하기 더 어려워진다. ‘디지털 평판’의 불가역성은 개인뿐 아니라 기업, 브랜드, 정치인들에게도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또한, 뉴미디어의 속성상 평판의 ‘도둑’—가짜 뉴스, 왜곡된 정보, 명예 훼손—이 ‘부자가 되지 않는다’는 규범적 경고는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처 입은 피해자는 회복 불가능한 사회적 빈곤에 빠지고, 도둑은 오히려 권력이나 영향력을 비틀어 갖게 되는 구조적 모순이 심화된다. 이 아이러니는 『오셀로』가 던진 본질적 근본 질문을 오늘날에도 계속 재조명하게 한다.
평판의 비가역성 때문에 우리는 선제적 관리에 집중하게 된다. 무엇보다 성숙한 사회 공동체는 선의와 투명성, 신뢰를 꾸준히 쌓아가는 관계망을 통해 평판의 자연스러운 생태계를 구축할 책임이 있다. 동시에, 개인도 무조건적인 자기 노출이나 무분별한 공격을 자제하며, ‘양도와 불가역성’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지키는 윤리적 성찰이 요구된다.
복원 가능한 평판 시스템의 모색은 법적·윤리적 틀에서 ‘명예 회복’과 ‘재사회화’의 장치 개발을 포함한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 ‘즉각적 낙인찍기’와 ‘디지털 익명성’이 만들어내는 평판의 왜곡을 막기 위한 다층적 노력이 필요하다. 즉, 평판은 단순한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구조적 관계망 속에서 재생산되고 조절되어야 하는 ‘관계의 상품’임을 자각해야 한다.
역사학자 플루타르코스는 기원전 1세기 로마 장군 루키우스 루쿠룰루스를 “군사적 패배보다 명예의 흠집을 더 두려워했다”고 기록한다. 루쿠룰루스는 정복지에서 전리품을 최소화하고 병사들의 약탈을 엄격히 금지해, 원정 비용보다 높은 ‘도덕 이익’을 겨냥했다. 이는 평판이 단순 호평(好評)이 아니라, 곧 사회적 자본임을 보여준다.
현대 경영학도 같은 결론을 제시한다.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의 레퓨테이션 인스티튜트 연구에 따르면, 동일 스펙의 지원자가 있을 때 HR담당자는 온라인 평판지수(링크드인·깃허브 커뮤니티 평가 등)가 높은 쪽을 64% 더 선호했다. 개인 브랜딩 시대, 평판은 이력서보다 먼저 열람되는 ‘비공식 이력’이다.
평판을 지키는 실전 규칙은 복잡하지 않다. 첫째, 작은 합의를 과소평가하지 말 것. 이메일 회신 기한·회의 시간 엄수·저작권 표기 같은 사소한 약속이 반복되면 ‘신뢰 점수’가 배가된다. 둘째, 디지털 잔상을 관리할 것. SNS는 감정의 순간포착이지만, 인터넷은 영구 기록 장치다. 분노의 5초가 5년 뒤 발목을 잡을 수 있다. 셋째, 자정 메커니즘을 확보할 것. 실수를 인정하고 수정 내역을 투명하게 공유하는 조직·개인은 오히려 신뢰도가 상승한다는 하버드비즈니스리뷰의 통계가 이를 뒷받침한다.
평판은 거울이 아니다. 거울은 지금의 얼굴만 비추지만, 평판은 뒤에서 따라오는 그림자처럼 과거·현재·미래를 한꺼번에 품는다. 낮의 태양 앞에서는 선명하게, 밤의 가로등 아래서는 길게 늘어져 우리의 행보를 설명한다. 그러니 자기 이름 위에 얹을 다음 발걸음을 고르는 일—그게 바로 책임이다.

블루에이지 회장; 콘텐츠 기획자 · 브랜드 마스터 · 오지여행가 · 국제구호개발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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