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애가 넘칠 때스스로를 사랑하다가 타인을 잃는 법

스스로를 사랑하라는 말은 아름답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넘칠 때,
그 물은 제 잔을 넘쳐 주변 흥건하게 적셔버린다.
자가애는 본디 고귀한 것이다.
나를 존중하는 첫걸음이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자기 방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넘치는 사랑은 때때로 독이 되며,
너무 밝은 빛은 그림자를 남긴다.
자가애는 그렇게, 균형을 잃을 때
‘관계’를 무너뜨리는 칼이 된다.

“나는 특별하다”는 믿음, 거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그 다음 문장이다. “그러니 너희는 나를 따라야 해. 나한테 맞춰줘야해.”

자가애가 넘칠 때 사람은 타인을 가르치고 바꾸려 들고,
타인의 감정보다는 자신의 인정욕구에 우선순위를 둔다.
그 순간부터 관계는 협력에서 경쟁이 되고,
공감은 요구가 되고, 배려는 통제가 된다.
사랑은 ‘주는 것’이 아니라
‘받지 못해 화내는 것’이 되고,
결국 혼자만의 성을 쌓으며
“나는 왜 외로운가”를 되뇐다.

자가애가 넘치는 사람은 자신을 의심하지 않는다.
피드백은 공격으로 여기고, 침묵은 무시로 해석한다.
그들은 감정을 주도하고, 시선을 끌며, 감탄을 요구한다.
하지만 정작 그들의 마음속은 ‘불안’이라는 빈 공간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더 많이 포장하고, 비교하며, 과장한다.
진짜 나를 보여주기보다는, 좋아보이는 나를 연기한다.
그들은 혼자 빛나는 별이 되려 하지만,
그 빛은 어느새 타인의 어둠을 만든다.

자가애의 지나침은 공감 능력을 갉아먹는다.
사람을 수단으로 여기게 만들고,
상대방의 슬픔을 가벼운 불편함쯤으로 느끼게 만든다.
“나는 저럴 때 그렇게 하지 않았어.”
“나는 저 사람보다 더 잘했는데.”
이런 문장은 타인을 위로하는 척 하면서도
끝내는 자신만을 드러내는 데 집중된다.

그래서 자가애가 넘칠 때, 사람은 사람을 잃는다.
좋은 사람은 피곤하다는 이유로 멀어지고,
친밀했던 관계는 일방적 에너지 소모가 되어 떠나간다.
자기중심의 사고는 늘 ‘내가 옳다’는 서사 속에서만 숨을 쉬고,
끝내 외로움을 상대로 불필요한 승부를 벌인다.

그러니 자가애는, ‘사랑하는 방식’을 돌아보는 일이다.
나는 나를 어떻게 사랑하는가?
그 사랑은 나를 보호하고 있는가, 아니면 타인을 지배하려 하는가?
나는 나를 높이는 동시에, 남을 끌어내리고 있지는 않은가?

건강한 자가애는 나를 존중함으로써,
타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만드는 ‘성숙의 발판’이어야 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말이, ‘너도 너답게 살아라’는 시선으로 이어질 때
우리는 비로소 관계라는 세계에서 함께 숨을 쉬게 된다.

넘치는 자가애는 때로 삶의 감각을 왜곡시킨다.
‘사랑한다’는 말이, 관계의 출발이 아니라
종착점이 되지 않도록 늘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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